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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 제라늄시(詩)/이규리 2022. 7. 22. 16:33
안에서는 밖을 생각하고 밖에서는 먼 곳을 더듬고 있으니 나는 당신을 모르는 게 맞습니다 비 맞으면서 아이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약속이라고,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물은 비를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나 봐요 그런 은유라면 나는 당신을 몰랐다는 게 맞습니다 모르는 쪽으로 맘껏 가던 것들 밖이라는 원망 밖이라는 새소리 밖이라는 아집 밖이라는 강물 조금 먼저 당신을 놓아주었다면 덜 창피했을까요 비참의 자리에 대신 꽃을 둡니다 제라늄이 창가를 만들었다는 거 창가는 이유가 놓이는 곳이라는 거 말 안 해도 지키는 걸 약속이라 하지요 늦었지만 저녁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저녁에게 이르도록 하겠어요 여름, 비, 안개, 살 냄새 화분을 들이며 덧문을 닫는 시간에 잠시 당신을 생각합니다 흔들림도 이젠 꿈인데 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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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 돌꽃 피다시(詩)/시(詩) 2022. 7. 21. 20:08
구겨진 그늘 속에서 순간의 영원이 꿈틀거렸다 한 생애 딱딱한 그리움과 가슴 깊이 들여놓은 상처까지, 꽉 찬 고독을 끌어안고 세상에 나오는 일은 쉽지 않다 과묵한 돌멩이는 자신을 속박하거나 상한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웃자란 시간을 베어버리거나 밀어를 깨우는 눈물이었으니 무표정에 익숙해질 때 어색한 감정을 유예하지 못하고 피어나는 것이, 돌꽃이다 사무치는 뼛속까지 범람하는 환희에 하늘이 내려와 첨벙거렸다 잠든 해 건져낸 이승 어디쯤에서 천만년을 살아있게 하는가 차라리 고요한 춤을 추듯 바람보다 가볍게 날개를 꿈꾼 수석(壽石) 온몸을 꽃으로 피어 삶의 고비마다 나비를 불러들인다 (그림 : 김동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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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 동행시(詩)/이정하 2022. 7. 19. 21:44
같이 걸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우리 삶에 따스한 것은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혼자였다. 기대고 싶을 때 그의 어깨는 비어 있지 않았으며, 잡아 줄 손이 절실히 필요했을 때 그는 저만치서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산다는 건 결국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비틀거리고 더듬거리더라도 혼자서 걸어야 하는 길임을, 들어선 이상 멈출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그 외길... 같이 걸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아아! 그것처럼 내 삶에 절실한 것은 없다. (그림 : 정인성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