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신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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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균 - 오래된 의자시(詩)/신미균 2022. 5. 1. 17:43
생각이 삐그덕 움직이자 쇠못 하나가 겨드랑이에서 쑥 빠져나옵니다 망치로 빠져나온 쇠못을 박아 넣자 등받이가 왼쪽으로 기울어 버립니다 어렸을 때 동생과 그 위에서 마구 뛰고 싸우고 던지고 온갖 까탈을 부려도 묵묵히 다 받아준 의자 언제고 필요하면 아무 생각없이 털썩 앉곤 했는데 기울어진 의자를 바라보니 어깨가 시큰거리며 풍 맞아 기우뚱해진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오래 됐다고 망치로 이리저리 내리치다 안 되면 버리려고 하다니 이번엔 아무리 돈이 들어도 의자를 제대로 고쳐야겠습니다 (그림 : 임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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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균 - 감자밭시(詩)/신미균 2020. 5. 9. 16:26
말을 캐러 밭으로 갔다 가끔 톡톡 튀기도 하고 소근대기도 하는 소리들이 나를 잡는다 몇몇 웃자란 잎들은 물고기처럼 솟아오르기도 하고 고개를 뒤로 젖혀 웃기도 했다 줄기를 쳐내자 싱싱한 유리 섬유의 햇빛이 투명하게 쏟아진다 나는 그빛에 취해 눈을 감는다 여치와 메뚜기가 정신없이 뛰어올라 옷이며 팔 다리에 소리들을 묻혀 놓는다 그 소리들은 향기롭다 지하철의 소음이나 기계 소리에 섞여 있지 않은 녹색의 향기가 섞여 있다 내가 뿌려 놓은 말의 줄기를 하나 찾아 땅 속으로 파들어 갔다 그동안 잘 돌보지도 않았는데 주먹만한 것 하나 호미 끝에 달려나온다 밭에는 언제나 말들이 풍성하다 캐보면 어느새 커져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땅 속에는 내가 뿌려놓은 따뜻한 말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그림 : 남일 화백) S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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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균 - 뻥튀기 아저씨시(詩)/신미균 2020. 2. 1. 13:02
신림 8동 재래시장 담벼락에 붙은 뻥튀기 아저씨 골목 바람 저문 날도 심심치 않게 튀겨낸다 사카린 한 숟갈 집어넣고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청사포 앞바다 발동기 돌리 듯 배앵뱅 뻥튀기 통을 돌리면 얼씬거리던 추위는 저만치 물러나고 울퉁불퉁 일어나는 팔뚝의 배 한 척 물때 만난 참조기들이 저녁놀에 튀겨지던 윤기 나는 바다 신들리게 그를 당기던 시절 숨 가쁜 세상 누가 돌려주지 않아도 어지러운데 뻥튀기 통은 자꾸자꾸 돌고 두둥실 떠나지 못하는 배는 오늘도 낡은 팔뚝에서 출항을 포기하고 만다 (그림 : 박*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