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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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 쓸 만하다고 생각해서 쓴 연애편지시(詩)/김용택 2023. 6. 25. 08:22
창문을 열어놓고 방에 누워 있습니다 바람이 손등을 지나갑니다 이 바람이 지금 봄바람 맞지요? 라고 문자를 보낼 사람이 생겨서 좋습니다 당신에게 줄 이 바람이 어딘가에 있었다는 게 이상하지요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들 하는데 이 말이 그 말 맞네요 차를 타고 가다 어느 마을에 살구꽃이 피어 있으면 차에서 내려 살구꽃을 바라보다 가게요 산 위에는 아직 별이 지지 않았습니다 이맘때 나는 저 별을 보며 신을 신는답니다 당신에게도 이 바람이 손에 닿겠지요 오늘이나 내일 아니면 다음 토요일 만나면 당신 손이 내 손을 잡으며 이 바람이 그 바람 맞네요, 하며 날 보고 웃겠지요 (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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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 수양버들시(詩)/김용택 2019. 9. 4. 14:16
너를 내 생의 강가에 세워두리. 바람에 흔들리는 치맛자락처럼 너는 바람을 타고 네 뒤의 산과 네 생과 또 내 생, 그리고 사랑의 찬연한 눈빛, 네 발 아래 흐르는 강물을 나는 보리. 너는 물을 향해 잎을 피우고 봄바람을 부르리. 하늘거리리. 나무야, 나무야! 휘휘 늘어진 나를 잡고 너는 저 강 언덕까지 그네를 타거라. 산이 마른 이마에 닿는구나. 산을 만지고 오너라. 달이 산마루에 솟았다. 달을 만지고 오너라. 등을 살살 밀어줄게 너는 꽃을 가져오너라.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 하늘거리는 치맛단을 잔물결이 잡을지라도 한 잎 손을 놓지 말거라. 지워지지 않을 내 생의 강가에 너를 세워두고 나는 너를 보리. (그림 : 노경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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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 그대 생(生)의 솔숲에서시(詩)/김용택 2018. 4. 15. 16:57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림 : 정수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