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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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혼자의 넓이시(詩)/이문재 2021. 10. 27. 18:25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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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큰 꽃시(詩)/이문재 2018. 6. 14. 21:41
꽃을 내려놓고 죽을 힘 다해 피워놓은 꽃들을 발치에 내려놓고 봄나무들은 짐짓 연초록이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맑은 노래가 있지만 꽃 지고 나면 봄나무들 제 이름까지 내려놓는다. 산수유 진달래 철쭉 라일락 산벚 -- 꽃 내려놓은 나무들은 신록일 따름 푸른 숲일 따름 꽃이 피면 같이 웃어도 꽃이 지면 같이 울지 못한다. 꽃이 지면 우리는 너를 잊는 것이다. 꽃 떨군 봄나무들이 저마다 다시 꽃이라는 사실을 저마다 더 큰 꽃으로 피어나는 사태를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지지 않는다.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고 더 큰 꽃을 피워낸다. 나무는 꽃이다. 나무는 온몸으로 꽃이다. (그림 : 김현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