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박용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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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 가을의 노래시(詩)/박용래 2021. 10. 8. 18:36
깊은 밤 풀벌레 소리와 나뿐이로다 시냇물은 흘러서 바다로 간다 어두움을 저어 시냇물처럼 저렇게 떨며 흐느끼는 풀벌레 소리...... 쓸쓸한 마음을 몰고 간다 빗방울처럼 이었던 슬픔의 나라 후원(後園)을 돌아가며 잦아지게 운다 오로지 하나의 길 위 뉘가 밤을 절망(絶望)이라 하였나 말긋말긋 푸른 별들의 눈짓 풀잎에 바람 살아 있기에 밤이 오고 동이 트고 하루가 오가는 다시 가을밤 외로운 그림자는 서성거린다 찬 이슬밭엔 찬 이슬에 젖고 언덕에 오르면 언덕 허전한 수풀 그늘에 앉는다 그리고 등불을 죽이고 침실(寢室)에 누워 호젓한 꿈 태양(太陽)처럼 지닌다 허술한 허술한 풀벌레와 그림자와 가을밤. (그림 : 박항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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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 월훈(月暈)시(詩)/박용래 2014. 11. 14. 11:06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기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 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