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양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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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규 - 꽃들에 대하여시(詩)/양문규 2018. 1. 22. 00:41
올해 처음으로 피어난 꽃들에 대하여 아름답다 말하지 말자 봄날로부터 가을에 해거름까지 우리들이 발을 붙이고 있는 이 땅의 어디에서나 피어있을 그 꽃들을 함부로 얘기하지 말자 그리움과 사랑 같은 혹은 순수나 빛깔 따위 마음을 치장하는 너울이 아님을 가지마다 흐트러지는 잎의 하나하나에 말 못할 아픔 베올로 짜여 있음을 우리 얘기하지 말자 묏등 가에 서 있는 들꽃 한 송이 멀리서 그저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아니, 이 땅의 주름진 하늘 끝에 닿아 되돌려지는 메아리로 누구나 꽃밭에서 생각하던 통곡하다 떠나간 거리의 한 모퉁이 들꽃에 대하여도 우리 말하지 말자 결코 아름답다 얘기하지 말자 (그림 : 김용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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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규 - 옛주막에서시(詩)/양문규 2017. 12. 12. 13:05
산등성이 휘감아 골짜기를 굽이돌아, 풍양 삼강 둑방 아래 옛주막집, 거동이 불편한 팔십 넘은 노파 홀로 살고 있다. 강과 집 사이 벽이 높아 강은 보이지 않는다. 강을 따라 4차선으로 뚫린 낯선 풍경으로 쌩쌩 달리는 시간 속에 정지된 옛주막. 술동이에 고인 빗물을 바가지로 퍼서 가지밭에 흩뿌린다. 무논에서는 개구리들이 울고, 길을 묻는 떠돌이에게 술대신 물을 권하며 간간이 옛날을 떠올린다. 잊어야 할 것들은 하나씩 잊어야 산다. 탁주 한잔에 시름을 덜었던 가난한 세월을 밟고 살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북적이던 사람들 대신 , 평상에는 벼랑 끝 늙은 회화나무 그늘만 가득하다. 물과 물이 엉기며 흘러들어 바닥의 중심을 이루었던 옛나루터, 회화나무는 길 속으로 사라지는 오래된 풍경을 제 살붙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