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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스치는 건 바람만이 아니다 솟아오르는 절정 스러지는 저 탄식 손 털고 일어서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그림 : 모미화 화백)
다 사랑할 거야, 다 사랑해 줄 거야 자꾸 결심하는 너는 오늘 괴로웠구나 가슴에 가시 박힌다 해도 널 포옹해 줄 거야 (그림 : 정종기 화백)
꽃철 질러온 게 죄라면 죄이리 눈밭 자리 본 데 그대 아니 계시니 눈부처 환히 피우실 그대 아니 오시니 (그림 : 이세욱 화백)
누가 제 눈으로 제 얼굴 보았으리 거울 속 얼굴이여 '나'라는 사람이여 꾸미고 꾸민다 해도 드러나는 본모습 이 모래판 위에 무어라 적을까 그래서 좋았다 쓸까, 그래도 좋았다 쓸까 꼬리가 지운 발자국 따라 오는 소리들 (그림 : 김종훈 화백)
은은히 지면 너 그만인 거니 바라만 보다 갈게 거기 그냥 있어 줘 이렇게 환히 물들여 놓고 수줍어하지 마 운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래 몰라 그렇지 외롭지 않은 이 어디 있어 너에게 스미는 만큼 그만큼은 흔들릴게 (그림 : 이기우 화백)
잔잔한 냉이 꽃이 풀밭 위에 아름다운 건 바람 가는 대로 흔들렸다 흔들려서가 아니다 날 따라 냉이 꽃무리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림 : 김인순 화백)
도라지 삼국화 핀 촌집이 좋아 맴돌다가 돌다가 꽃사진만 잔뜩 담아 왔는데 진정 나 좋아한 건 무얼까, 꽃일까 집일까 널 좋아한 게 아니라 너의 말이 좋았던 거야 널 좋아한 게 아니라 그 꽃자리가 좋았던 거야 그 집을 떠나며 무느며 나는 자꾸 울었네 무느다(타동사) : 무너지거나 흩어지게 하다 (그림 : 이남순 화백)
사랑이 시작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다시 외로워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외딴섬 지독한 고독만이 어둠 속에 빛이어도 밀어닥치던 사랑이 나를 축복하고 떠나도 하얀 낙화(落花) 천천히 배경으로 물러나도 사랑이 시작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림 : 이영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