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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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 연보(年譜)시(詩)/이육사 2020. 3. 2. 14:44
'너는 돌다릿목에서 줘 왔다'던 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하자. 나는 진정 강 언덕 그 마을에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몰라. 그러기에 열 여덟 새 봄은 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내고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 공명이 마다곤들 언제 말이나 했나. 바람에 붙여 돌아온 고장도 비고 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위에 간(肝)잎만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 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 해도 쇠사슬을 잡아맨 듯 무거워졌다. 눈 위에 걸어가면 자욱이 지리라. 때로는 설레이며 바람도 불지. (그림 : 한희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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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 노정기(路程記)시(詩)/이육사 2015. 10. 24. 22:31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 (그림 : 윤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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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 초가(草家)시(詩)/이육사 2014. 3. 7. 15:07
구겨진 하늘은 무근 얘기책을 편듯 돌담울이 고성(古城)가티 둘러싼산(山)기슬 박쥐 나래밑에 황혼(黃昏)이 무쳐오면 초가(草家) 집집마다 호롱불이켜지고 고향(故鄕)을 그린 묵화(墨畵) 한폭 좀이쳐. 띄염 띄염 보이는 그림 쪼각은 압밭에 보리밧헤 말매나물 캐러간 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소리에 반해 빈바구니 차고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레짠 두뺨우에 모매꽃이 피엿고. 그네줄에 비가오면 풍년(豊年)이 든다더니 압내강(江)에 씨레나무 밀려나리면 절믄이는 절믄이와 떼목을타고 돈 벌러 항구(港口)로 흘러간 몇달에 서리ㅅ발 입저도 못오면 바람이분다. 피로가군 이삭에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놈이 북극(北極)을 꿈꾸는데 늘근이는 늘근이와 싸호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애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洞里)의 밀고자(密告者)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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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 강 건너간 노래시(詩)/이육사 2014. 3. 7. 15:05
섯달에도 보름께 달발근밤 앞내강(江) 쨍쨍어러 조이든밤에 내가부른 노래는 강(江)건너갓소 강(江)건너 하늘끗에 사막(沙漠)도 다은곳 내노래는 제비가티 날러서갓소 못이즐 게집애나 집조차 업다기에 가기는 갓지만 어린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모래불에 떠러져 타서죽겟죠. 사막(沙漠)은 끗업시 푸른하늘이 덥혀 눈물 먹은 별들이 조상오는밤 밤은 옛일을무 지개 보다곱 게 짜내나니 한가락 여기두고 또한가락 어데멘가 내가부른 노래는 그밤에 강(江)건너 갓소. (그림 : 박항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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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 자야곡(子夜曲)시(詩)/이육사 2014. 3. 7. 15:02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 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돌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절여 바람도 불고 눈보라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 막힐 마음 속에 어디 강물이 흐르느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노라.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그림 : 박항율 화백) (강기훈 화백 - 이육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