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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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기차시(詩)/신경림 2019. 9. 9. 21:18
꼴뚜기젓 장수도 타고 땅 장수도 탔다 곰배팔이도 대머리도 탔다 작업복도 고무신도 하이힐도 탔다 서로 먹고 사는 얘기도 하고 아들 며느리에 딸 자랑 사위 자랑도 한다 지루하면 빙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끝에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투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차창 밖에 천둥 번개가 치면 이마를 맞대고 함께 걱정을 한다 한 사람이 내리고 또 한 사람이 내리고...... 잘 가라 인사하면서도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들 가는 곳 어덴가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냥 그렇게 차에 실려 간다 다들 같은 쪽으로 기차를 타고 간다 (그림 : 김태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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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장항선시(詩)/신경림 2017. 6. 29. 18:29
자리를 내주었더니 보따리에서 찐 고구마를 내 놓는다 할머니는 시집간 막내한테 갔다 오는 길이다 풍금 잘 타고 뜀박질 잘하는 소학교 선생 노릇하는 딸년 자꾸만 눈에 밟혀 기차는 사과밭 감밭 사이를 달리고 갯비린내 뒤덮인 정거장에서마다 얘기보따리들을 한아름씩 안은 할머니들을 태운다 그리하여 서부역에 닿은 장항선 밤차는 갯마을처럼 끈끈하고 너절한 얘기들을 온 서울 장안에 뿌려놓는다 장항선(長項線) : 충청남도 천안시의 천안역을 기점으로 서해안을 경유하여 전라북도 익산시의 익산역을 종점으로 하는 한국철도공사의 철도 노선이다. 천안역부터 신창역까지는 수도권 전철이 병행되고 있다. 서천군 장항읍에 위치하였던 종착역인 장항역의 이름을 따 장항선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나, 2007년 12월 장항선과 군산선이 연결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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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안의장날시(詩)/신경림 2017. 6. 29. 18:18
산나물을 한 소쿠리 다 팔고 비누와 미원을 사든 할머니가 늙은 마병장수와 장국밥은 먹고 있다 한낮이 지나면 이내 파장이 오고 이제 내외가 부질없는 안팎사돈 험하게 살다 죽은 사위 아들의 얘기 애써 피하면서 같이 늙는 딸 며느리 안부만이 급하다 손주 외손주 여럿인것이 그래도 대견해 눈물 사이사이 웃음도 피지만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이토록 오래 살아 있는 것이 영화라고 아니면 더 없는 욕이라고 안의장날 : 경남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 243번지에 위치한 5일장 (5일, 10일) 마병장수 : 철지나 헐고 싼 물건을 파는 사람. (그림 : 김의창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