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나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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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 - 구둔역시(詩)/나호열 2022. 4. 14. 19:37
어느 사람은 떠나고 어느 사람은 돌아오고 어느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않고 어느 사람은 끝끝내 잊혀지지 않고 저홀로 기다림의 키를 세우고 저홀로 그리움을 아로새기는 저 느티나무와 향나무 구둔역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그 무엇이 된다 눈길 닿는 곳 허물어지고 낡아가는 그 무엇의 주인공이 되어 쿵쿵 가슴을 울리며 지나가던 청춘의 기차를 속절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누구의 구둔역인가 속말을 되내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구둔역(九屯驛)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에 있는 폐역된 간이역으로, 등록문화재 제296호. 1940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중앙선의 간이역이다. 청량리-원주간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기존 노선이 변경되어 2012년 8월 16일 폐역되었다. 구둔역은 원래 자리에서 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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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 - 정선 장날시(詩)/나호열 2019. 7. 26. 21:42
이제는 늙어 헤어지는 일도 섭섭하지 않은 나이 사고 싶은 것도 없고 팔아야 할 것도 없는 장터 이쯤에서 산이 높아 일찍 노을 떨구는 잊어버린 옛사랑을 문득 마주친다면 한 번 놓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낯익은 얼굴들 묵묵부답인 저 표정을 배울 수 있을까 알아도 소용없고 이름 몰라도 뻔히 속 보이는 강물을 닮은 얼굴들이 휘영청 보름달로 떠서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아라리로 누구의 가슴을 동여매려 하는가 함부로 약속을 하지 말 일이다 다음 장날에 산나물이라도 팔 것이 있으면 오고 살 물건이 없으면 오지 않을 것이다 문득 피어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질 때 더욱 보고 싶어지는 그런 꽃처럼 정선장 : 정선5일장(旌善五日場).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 5일마다 열리는 정기 전통시장. 전국 최대규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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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 - 낭만에 대하여시(詩)/나호열 2017. 12. 7. 00:00
낭만이라는 찻집은 바닷가에 있다 방파제 끝까지 가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대부분 서서 있게 마련이지만 음악은 늘 신선하다 적당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처럼 테이프는 조금 늘어져 있다 며칠씩 묵고 가는 사람은 없다 밀물이오면 지워지는 발자국 몇 개 남기고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를 해적거리다가 추억 속에 노을을 엎지르고 황급히 길을 되짚는다 아무곳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끝이 보이지만 빈 그물 속에 끌려 들어온 바다를 버리지 못해 한평생 끌탕을 하는 어부들에게 수평선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방파제 끝까지 가지 않지만 방파제 끝이 바다의 시작인 것을 낭만이라는 찻집은 바닷가에 없다 (그림 : 설종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