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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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달래 할머니시(詩)/이동순 2019. 7. 28. 17:54
아들네들 도시로 떠나고 없는 빈 집에 혼자 남아서 마당에 달래를 심어놓고 한번씩 그 달래는 뽑아다가 시장으로 팔러 나가는 한 할머니를 나는 압니다 때로는 버스를 타고 도심지 아파트 앞까지도 간다고 합니다 이제 이 봄이 가고 나면 할머니는 시장에 나가 팔 것이 변변치 않습니다 그런 날 할머니는 뒷마루에 나와 앉아 혼자 떠돌다가 할머니 주는 밥에 아예 정을 붙여버린 한쪽 발 없는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종일 등만 쓰다듬을 것입니다 달래야 달래야 더디 지거라 더디 지거라 할머니 시장가실 날이 하루라도 더 많도록 (그림 : 임종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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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감자밥시(詩)/이동순 2019. 7. 28. 17:45
아지랑이 빈 들판에 가물거리면 싱그런 봄내음 가득한 냉이국 상에 오르네 국사발 옆에는 사기 밥그릇 고슬고슬 지어진 좁쌀 밥 속에 이쁘게 박힌 것이 무엇인가 부엌 아궁이 솥단지에 감자 깎아 놓으라는 엄마 목소리 들리네 여름해 일찍 떠오르고 나는 삿자리 깔고 앉아 숟가락으로 박박 감자껍질 벗기네 오랜 세월 감자껍질 벗기느라 반쯤 닳아있는 놋쇠 숟가락 바닷가 아낙네들 쌀도 없이 차려내는 아침 밥상 좁쌀 서너 줌 넣고 감자 섞어 지어내면 보기만 해도 그득해 보였던 고봉 감자밥이여 메주고추장 휘이 둘러 바가지에 척척 비벼내면 마당귀 그늘에 앉아 짧기만 하던 하루 해여 (그림 : 이원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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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산수유시(詩)/이동순 2018. 4. 19. 20:08
그 모진 겨울 이겨내고 단 하나도 지치거나 낙오자 없이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황금빛 산수유꽃 만발했네 하나 둘도 아니고 마을의 수천 그루 나무들 가지마다 눈부신 꽃등 일제히 밝히고 노오란 깃발 흔들어대네 눈 감으면 그대 함성 들려오네 피어있는 시간 그리도 짧아 이름조차 수유던가 거친 고목등걸에서 어쩌면 그토록 고결한 빛깔 빚어내는가 이곳 찾아온 사람들 행여 초행 걸음에 길 잘못 들세라 봄바람 속에 우뚝 서서 바른 갈피 제대로 일러주는 산수유나무 띠띠미 마을 : 산수유 재배지로 유명한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두동마을 띠띠미는 원래 뒤쪽 골짜기를 뜻하는 '뒷드미'가 변해서 된 지명이다 (그림 : 이섭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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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옹기 김수환시(詩)/이동순 2018. 4. 18. 22:25
아베는 떠돌이 옹기장수 아베 돌아가시고 나서 어매도 두 팔 걷어붙이고 옹기장수 점골에서 만든 질그릇 오지그릇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어매는 새벽길 떠나 효령 장 가셨다 장날이면 형아랑 해 저물도록 마루에서 어머니를 기다렸지 달빛 밟고 서둘러 걸어오시던 어매 세상의 온갖 것 두루 끌어안고 사람들 아픔과 서러움까지도 담아주는 옹기 되라 하셨지 이 나라 황토 흙으로 투박하게 빚어 가마 속 불로 오래 오래 구워낸 옹기 김수환 점골 : 김수환 추기경이 소년시절 약 10년간 살았던 경북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의마을. 옹기 : 김 추기경의 아호 (그림 : 조광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