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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무슨 슬픔 그리도 많아 섬이여 너는 온종일 눈물에 젖어 있는가 전설은 몽돌처럼 수만 년 물결에 쓸리고 쓸려 다 닳은 얼굴로 덜그럭덜그럭 증얼거리며 뒹굴고 그대의 가슴뼈는 해풍에 시달려고 시달려 하얀 촛대처럼 빛 바래졌는데 등대는 무슨 기막힌 사연 전해 주려고 긴 밤 꼬박 지새우며 불 깜빡이는가 (그림 : 김애란 화백)
꽃은 피었다가왜 이다지 속절없이 지고 마는가 봄은 불현듯이 왔다가 왜 이다지 자취없이 사라져버리는가 내 사랑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모두 이렇게 다 떠나고 끝까지 내 곁에 남아 나를 호젓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다만 빈 그림자뿐이려니 그림자여 너는 무슨 인연 그리도 깊어 나를 놓지 못하는가 이 봄날엔 왜 그저모든 것이 아쉬웁고 허전하고 쓸쓸한가 만나는 것마다왜 마냥 서럽고 애틋한가 (그림 : 김현정 화백)
그대가 별이라면 저는 그대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습니다 그대가 노을이라면 저는 그대 뒷모습을 비추어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습니다 그대가 나무라면 저는 그대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합니다 오, 그대가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라면 저는 그대가 앉아 쉬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습니다 (그림 : 우창헌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