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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꽃 땅바닥에 엎드려 피는 꽃 그래도 해님을 좋아해 해가 뜨면 방글방글 웃는 꽃 바람 불어 키가 큰 꽃들 해바라기 코스모스 넘어져도 미리 넘어져서 더는 넘어질 일 없는 꽃 땅바닥에 넘어졌느냐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거라! 사람한테도 조용히 타일러 알려주는 꽃. (그림 : 이현섭 화백)
멀리서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아 가끔 목소리 듣기만 해도 좋아 그치만 아이야 너무 가까이 오려고 애쓰지 말아라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고 하늘까지 높은 날 봄날이라도 눈물 글썽이는 저녁 무렵 나는 여기 잠시 너 보다가 날 저물면 돌아갈 사람이란다. (그림 : 노숙자 화백)
너 내게서 떠나는 날 꽃이 피는 날이었으면 좋겠네 꽃 가운데에서도 목련꽃 하늘과 땅 위에 새하얀 꽃등 밝히듯 피어오른 그런 봄날이었으면 좋겠네 너 내게서 떠나는 날 나 울지 않았으면 좋겠네 잘 갔다 오라고 다녀오라고 하루치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 가볍게 손 흔들듯 그렇게 떠나보냈으면 좋겠네 그렇다 해도 정말 마음속에서는 너도 모르게 꽃이 지고 있겠지 새하얀 목련꽃 흐득흐득 울음 삼키듯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려앉겠지 (그림 : 한부철 화백)
아파트 베란다 창문 열자 건너다 보이는 집 담장 위에 줄지어 피어있는 붉은 줄장미꽃 줄장미꽃 보고 울컥한다 벌써 이렇게 되었나! 줄장미꽃 담장 아래 흩어진 붉은 꽃잎들 보며 다시 울컥한다 아, 저 붉은 것들의 흐느낌 그 위로 이중으로 얹히는 꾀꼬리 뻐꾸기 울음 서늘한 그늘 아무렇게나 세상은 6월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음영 사람들 일과는 무관하게 흐드러지게 아름답고 질펀하도록 눈부시구나. (그림 : 박향순 화백)
늙지 말고 가거라 어디든 가거라 고운 얼굴 눈부신 모습 치렁한 머리칼 그대로 바람에 날리며 햇빛에 반짝이며 강물 위를 걸어서 가거라 푸른 들판을 밟으며 가거라 모래밭 서걱이며 사막을 건너라 그래서 네가 되거라 오로지 네가 되고 싶은 네가 되거라 굳이 이곳으로 돌아오려고 애쓰지는 말거라 그곳에서 씨를 뿌리며 너도 나무가 되거라 강물 이 되거라 들판이 되거라 늙지 말고 가거라 청춘인 그대로 가거라. (그림 : 전미숙 화백)
함께 살았으면 분명 미워도 했을 것이고 싫을 때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함께 살지 않았으므로 좋은 느낌 하나로 남아 있는 지금이 더 좋아요 하얗게 웃으면서 힘없이 말하는 그녀의 말소리가 독백처럼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 당신은 내가 두고 온 그 나라의 오직 한 사람이에요. (그림 : 신흥직 화백)
점심 모임을 갖고 돌아오면서 짬짬이 시간 돌아오는 길에 들러본 집이 좋았고 만난 사람은 더 좋았다 혼자서 오래 산 사람 오래 살았지만 외로움을 잘 챙겼고 그러므로 따뜻함을 잃지 않은 사람 마주 앉아 마신 향기로운 차가 좋았고 서로 웃으며 나눈 이야기는 더욱 좋았다 우리네 일생도 그렇게 끝자락이 더 좋았다고 향기로웠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림 : 김대섭 화백)
남의 집 추녀 밑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날 저물 때까지 그때는 할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어머니도 계셨는데 어머니래도 젊고 이쁜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때는 내가 바라보는 흰 구름은 눈부셨는데 풀잎에 부서지는 바람은 속살이 파랗게 떨리기도 했는데 사람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달 떠 올 때까지. (그림 : 박주경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