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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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 내가 어렸을 적에시(詩)/고영민 2019. 8. 14. 12:20
나에게는 젊은 엄마가 있었지 커다란 개가 있었지 가득 찬 눈물 터져 나오는 웃음 빠른 발과 관절, 반짝이는 검은 머리칼,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었지 어떤 속삭임도 들을 수 있는 귀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눈 조잘대는 입과 달콤한 코가 있었지 담장 옆의 붉은 목단, 흙의 감정 나비를 좇던 호기심 분주한 꿀벌 다락방의 작은 유령과 행복한 그림자의 춤 나만 알고 있던 주문이 있었지 구름의 시간과 빗소리를 따라가던 오솔길이 있었지 흩뿌려진 별이 있었지 깊은 잠이 있었지 작은 방과 쓰러지는 집이 있었지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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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 백중사리시(詩)/고영민 2019. 8. 14. 12:17
삶이 문득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밀물 바닷물의 높이가 가장 높은 사리 무렵, 강은 제 높이로 흐르려 하나 바다가 강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삶도 밤낮의 달과 태양 같아 인력, 그 이유 없이 잡아당기는 힘으로 달과 태양이 같은 방향으로 놓이는 그믐녘과 또 만월엔 너와 와 한 방향이거나 서로 어긋나 어느 한날, 괜스레 섧고 흘러넘쳐라 바다가 강에게 말을 걸어올 때, 사리 중에서도 수위가 가장 높은 백중사리 차오르는 강심(江心)을 더듬어 흘러넘쳐도 자꾸만 넘쳐오르는 강둑, 유적(遺跡)의 토사를 몇 번이고 눈물로 넘겨 삼켜야 한다 백중사리 : 해수면의 조차가 연중 최대로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달과 태양과 지구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있으면서 달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거리(근지점, perigee)에 있을 때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