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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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만족시(詩)/한용운 2019. 7. 2. 20:20
세상에 만족이 있느냐? 인생에게 만족이 있느냐? 있다면 나에게도 있으리라. 세상에 만족이 있기는 있지마는 사람의 앞에만 있다. 거리는 사람의 팔 길이와 같고 속력은 사람의 걸음과 비례가 된다. 만족은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다. 만족을 얻고 보면 얻은 것은 불만족이요, 만족은 의연히 앞에 있다. 만족은 우자(愚者)나 성자(聖者)의 주관적 소유가 아니면 약자의 기대뿐이다. 만족은 언제든지 인생과 수적평행(竪的平行)이다. 나는 차라리 발꿈치를 돌려서 만족의 묵은 자취를 밟을까 하노라. 아아! 나는 만족을 얻었노라. 아지랑이 같은 꿈과 금실 같은 환상이 님계신 꽃동산에 들를 때에 아아! 나는 만족을 얻었노라. (그림 : 박항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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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잠 없는 꿈시(詩)/한용운 2019. 7. 2. 20:17
나는 어느 날 밤에 잠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의 님은 어데 있어요, 나는 님을 보러 가겄습니다. 님에게 가는 길을 가져다가 나에게 주셔요, 검이여' '너의 가려는 길은 너의 님이 오려는 길이다. 그 길을 가져다 너에게 주면, 너의 님은 올 수가 없다.' '내가 가기만 하면, 님은 아니 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너의 님의 오려는 길을 너에게 갖다 주면 ,너의 님은 다른 길로 오게 된다. 네가 간대도 너의 님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길을 가져다가 나의 님에게 주셔요.' '너의 님에게 주는 것이 너에게 주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저의 길이 각각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야 이별한 님을 만나보겠습니까' '네가 너를 가져다가 너의 가려는 길에 주어라. 그러하고 쉬지 말고 가거라.'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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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상자속에 숨기고 싶은 그리움시(詩)/한용운 2014. 2. 17. 12:33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않은 어느 햇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만 머물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람 같은 자유와 동심 같은 호기심을 빼앗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게만 그리움을 주고 내게만 꿈을 키우고 내 눈 속에만 담고픈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 눈을 슬프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작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을 담기에도 벅찬 욕심 많은 내가 있습니다. (그림 : 박항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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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인연설 1시(詩)/한용운 2014. 2. 1. 21:27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 입니다. 잊어 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어 버릴수 있다는 말 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읍니다. 헤어질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 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과 행복 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표정은 이별의 시작입니다. 떠날때 울면 잊지 못한다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 한다는 말 입니다. (그림 : 박항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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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인연설 3시(詩)/한용운 2014. 2. 1. 21:26
세상 사람들은 참 어리석습니다. 그리고 눈이 너무 어둡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스스로 우스워 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먼 먼 더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가까운 것은 벌써 가까운 것이 아니며 멀다는 것 또한 먼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가까운 것은 먼 곳에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먼 곳도 가까운것도 아닌 영원한 가까움인 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말이 없다는 것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정작 할 말이 없기 때문 입니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벌써 인사가 아닙니다. 참으로 인사가 하고 싶을 땐 인사를 못 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더 큰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랑하고 있는 사람 앞에선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못 한다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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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나는 잊고저시(詩)/한용운 2014. 1. 26. 21:44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저 하여요 잊고저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힐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도 말고 생각도 말아볼까요 잊든지 생각든지 내버려두어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 생각에 님 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고 죽음 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저 하는 그것에 더욱 괴롭습니다. (그림 : 박항율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