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전윤호
-
전윤호 - 보석상가시(詩)/전윤호 2023. 8. 13. 20:45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그리워 종로3가로 갔지 전화 한 통화에 일주일을 견디고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비싼 표를 사던 단성사는 보석가게가 되어 있었네 히잡을 쓴 여자들이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저 골목은 우리가 연기 속에 삼겹살을 굽던 곳 이미 그는 없는데 나는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건지 창덕궁으로 가는 길엔 화사한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꽃처럼 날아다니고 빨간 점퍼가 서러운 노인들이 그늘에서 막걸리 마시는 종로3가에는 나를 닮은 유령이 가로수로 서 있고 그때는 그리도 답답했던 순간들이 환한 불빛 속에서 보석으로 반짝이고 있더군 (그림 : 양종석 화백)
-
전윤호 - 별어곡역시(詩)/전윤호 2023. 1. 30. 11:17
지금 여기서 나와 헤어진다 싸락눈 내리는 적당한 이별의 온도 울지도 말고 웃지도 말고 그저 가슴께 높이까지만 손을 들어 잘 가라 다시 오지 마라 어디 먼 데 가 따숩게 살거라 추위에 지친 널 보내고 빙판길로 이어진 새로운 겨울 속으로 아주 들어간다 별어곡역 : 정선 남면에 가면 '별어곡(別於谷)'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의 이름이 별어곡입니다. 우리말로 풀면 "이별하는 골짜기"입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 무인역(無人驛)인 '별어곡역'이 있지요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별암(鼈巖), "자라바위"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마을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놈들이 "鼈巖"이라는 한자가 너무 어려워서 별어곡(別於谷)으로 고쳐 쓴 것이라는데요... 소가 뒷걸음치다 쥐잡을 격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별암보다는 별어곡이..
-
전윤호 - 정선에게시(詩)/전윤호 2020. 8. 24. 09:03
화암리 벼랑인 양 버티는 너를 좋아했지 마음 한 번 받지 못한 짝사랑이었어 가문 여름의 옥수수 밭처럼 매련없이 울다가 아무도 없는 역에서 밤기차 타고 떠났지 굴이 무너지고 철교가 끊어졌어 밀려난 것들끼리 거품이나 흘리는 하류에서 늘 입석으로 살았어 빈자리가 생겨도 앉지 않았지 언제든 돌아가야 하니까 가슴속엔 구멍이 생기고 점점 커졌어 한 방울 한 방울 그리움이 떨어져 종유석이 된다면 몇 억 년을 건너야 입구를 찾을까 오래 참은 아라리처럼 이제 나 돌아가려네 길은 흐리고 다른 우주가 머지않으니 바퀴들이 삐걱이며 비행기재 넘을 때 기어코 안개는 비가 되겠지 더는 오지 말라고 입술 터진 강물이 막아서고 나 따위 잊는 지 오래라고 좋은 사람 만나 잘산다 해도 나는 기필코 가네 이 한 목숨 함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