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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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담타령시(詩)/이동순 2015. 8. 21. 20:01
담아 담아 온갖 거기 서서 무얼 막노 바닷물을 막았으니 해변가엔 방파제요 여름 홍수 막으려고 시냇가엔 방죽이라 김장밭에 들어가는 개닭 막는 개바자요 수수깡 갈대풀로 촘촘하니 울바자라 대로 엮은 대울타리 돌로 쌓은 돌담이요 흙돌 반죽 돌죽담에 꽃수 놓은 예쁜 꽃담 깨진 기와 담에 박은 디새죽담 보기 좋네 돌멩이를 배 맞추어 마주 쌓은 맞담이요 석비레로 쌓았으니 이름조차 석비레담 담벽 아랜 수북하게 돌무더기 밑뿌리요 작은 돌을 포갰으니 보말담이 그것이라 자갈돌을 쓸어모아 차곡차곡 사스락담 일년 농사 물 대주는보를 막아 봇둑일세 탱자 두릅 심었어니 산뜻하다 산 울타리 뽕나무가 울이 되자 울뽕나무 멋스럽네 빈터를 에워싸서 쓸쓸하다 빈담이요 사방겹겹 빙 둘러쳐 답답하다 엔담이라 함석으로 높이 세운 붉게 녹슨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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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묵호등대시(詩)/이동순 2015. 8. 18. 12:58
저녁 뱃고동 소리 들려오면 가뜩이나 먹빛바다 더욱 검어지네 도째비골 언덕 아래로 채령이네 집 모퉁이 돌아 논골 쪽으로 내려가면 석구네집 또 그 옆으로는 자야네집 어스럼 속에서 등대는 슬픈 얼굴을 하고 종일 뱃일하다 돌아온 남편과 종일 오징어 배 따고 돌아온 아내가 싸우는 소리를 듣네 창백한 얼굴로 가슴 앓다 혼자 먼 길 떠나간 지아비 생각하며 이 밤도 등대앞에 나온 젊은 여인의 한숨 소리를 듣네 오래된 공동묘지 옆에 우뚝 서서 길 잃은 사람들의 앞을 밝혀주던 묵호등대 묵호항 :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 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 망상면 묵호진리로 동해안의 작은 어촌이었다. 1942년강릉군 망상면이 묵호읍으로 승격되면서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는데, 강릉이 시로 승격되면서 명주군에 속하였던 묵호읍은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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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미조항 블루스시(詩)/이동순 2015. 8. 18. 01:00
남항장 여관 앞길로 아침햇살 비틀비틀 걸어가네 어디서 온밤을 그렇게 통째로 마셔대었나 이젠 정신 좀 차리세요 눈 감고 전봇대에 기댄 그에게 바람이 속살거리네 기운차게 뱃고동 울리며 항구로 배 들어오네 먼 바다에서 꼬박 밤새운 어선들 갑판의 멸치더미 은빛구두 신고 춤을 추네 있는 힘껏 몸 솟구쳐 톡톡 뛰어 올랐다간 덧없이 제자리로 떨어지네 선창에 줄곧 부딪치는 파도와 닝닝 우는 전선줄만이 항구의 리듬이네 이런 율동에 맞추어 어부들 손길도 차츰 분주해지네 그물 말아 올리며 힘차게 털어내는 멸치 힘겨워도 어깨짓으로 숨결 고르며 서로 그물귀 맞잡고 노래까지 부르네 어부들 이리도 바쁠때 갈매기는 뱃머리에 앉아 틈새 엿보네 바다는 항구를 부여안고 검푸른 스텝을 밟네 오, 항구여 너는 출렁이는 한을 품고 몇백년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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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명태시(詩)/이동순 2015. 8. 17. 23:36
돌담 틈으로 바람 들어오는 소리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 한쪽 다리를 절면서 힘겹게 걸어오시던 날품팔이 아부지 발자국 소리 이런 저녁 꼭 상에 오르던 곤이 명란은 덕장에서 종일 지게 짐 지고 울 아부지 품값으로 받아 오신 찬거리 어두컴컴한 부엌에선 엄마 혼자서 가마솥에 명태 몇 마리 넣고 고춧가루 슬슬 뿌려 간 맞추고 파 송송 썰어 넣으면 서럽게 우러나던 국물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말없이 숟가락만 움직이던 식구들 평생 노동으로 구부정한 아부지 등은 점점 낙타를 닮아 가는데 그것이 애가 타서 석탄가루 덮인 항구 쪽 내려다보면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혀 오던 더운 눈물방울 (그림 : 이원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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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호박잎시(詩)/이동순 2015. 8. 17. 23:32
가난한 밥상 위에서 쓸쓸하게 차려내는 판잣집 아침 식사 무슨 별것인가 했더니 호박잎이네 똥개네 아부지 피어나지 못한 삶처럼 여기저기 담장 밑 둘레 아무 곳에나 힘겹게 제멋대로 돋아서 사립문 곁으로 기운차게 뻗어가는 한여름 아침 신 새벽부터 부지런히 길어다 물 부어주니 여기도 탱글 저기도 탱글 청보석처럼 빛나는 호박 아름다워라 사랑이여 상 위에 올라 드디어 자태를 뽐내는 한여름의 청춘이여 가난한 밥상머리에 똥개네 온가족 둘러앉아 구수한 된장에 푹 담구었다가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워가며 한 장씩 쌈 싸먹는 감격의 호박잎이여 (그림 : 변응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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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 누룩시(詩)/이동순 2015. 8. 17. 23:28
어둑어둑한 저녁 파장 무렵의 풍각장에서 누룩을 샀다 골라서 열 개만 사려다가 아예 상자째 모두 사버렸다 누룩은 이제 내 방 윗목에서 그윽하고 흐뭇한 향내를 솔솔 피운다 언젠가는 자신이 쓸쓸한 사람에게 찾아가 진실로 하나의 위로가 될 그날을 기다리는 누룩 나도 이 기운 없는 세상을 위해 한 장의 누룩이 되고 싶다 세상의 앞가슴을 온통 술기운으로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하고 싶다 그 누룩과 더불어 한 방에 자면서 나는 누룩이 장차 보드라운 가루로 빻여서 맑은 물과 찹쌀을 따뜻하게 껴안고 항아리의 어둠속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숨죽이며 하루 이틀 깊은 사색과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에 드디어 향기로운 정신으로 완성될 그 날의 감격을 아늑히 꿈꾼다 풍각장 :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572번지 일대 3천여평의 부지위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