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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저녁
파장 무렵의 풍각장에서 누룩을 샀다
골라서 열 개만 사려다가
아예 상자째 모두 사버렸다
누룩은 이제 내 방 윗목에서
그윽하고 흐뭇한 향내를 솔솔 피운다
언젠가는 자신이
쓸쓸한 사람에게 찾아가 진실로 하나의 위로가 될
그날을 기다리는 누룩
나도 이 기운 없는 세상을 위해
한 장의 누룩이 되고 싶다
세상의 앞가슴을 온통 술기운으로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하고 싶다
그 누룩과 더불어 한 방에 자면서
나는 누룩이 장차
보드라운 가루로 빻여서
맑은 물과 찹쌀을 따뜻하게 껴안고
항아리의 어둠속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숨죽이며
하루 이틀 깊은 사색과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에
드디어 향기로운 정신으로 완성될 그 날의 감격을
아늑히 꿈꾼다풍각장 :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572번지 일대 3천여평의 부지위에 들어서 있는 풍각장은 매 1, 6일 단위로 장이 선다. 1830년부터 청도천변인 이서면 가금리에서 성시 돼 오다 일제때인 1920년쯤 지금의 자리로 옮긴 풍각장의 번성기를 지난 60년대. 이 때 창녕, 밀양지역과 청도군내 각북, 각남, 이서 및 경산등지에서 몰려든 장꾼수는 3천명을 웃돈다. 그러나 요즘에도 풍각고추를 비롯, 청도특산물인 감, 복숭아와 수박.참외. 등 과일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와 명맥을 잇고 있으며 각북-달성간의 헐티재 포장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크고 껍질이 두꺼운 풍각고추는 단맛이 많아 한번 맛을 들인 사람은 계속 찾고 있으며 대구. 경북지역보다 오히려 부산.밀양.창녕등 부산.경남지역에 더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