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홍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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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 설인(雪人)에게시(詩)/홍성란 2017. 1. 26. 13:07
눈 오는 날 아무도 찾지 않는 산굽이 돌아 네가 날 찾으면 좋겠다 돌아보면 내 발자국만 따라오는 다들 버린 산길이라도 고스란히 쌓이는 눈 깊은 산길이라도 설레어 찾아가는 길 미끄러질까 더듬어 놓는 발길이면 어때 그러나 무시무종 파랑 치는 잔물결이면 어때 붉은 이마 식히는 찔레처럼 눈송이 휘도록 얹은 강아지풀처럼 네게 말하고 싶어 머리 가슴 배 동그란 마음 두 개 돌돌 굴려 어디 가두어둘까 눈 하고 사랑하려다 장난만 치고 돌아왔다고 그러나 무시무종 파랑 치는 잔물결이면 어때 그러니 고스란히 내려앉는 눈 문득 네 얼음집에 갇히었으면 좋겠다 (그림 : 김현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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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 지워지지 않는 노래시(詩)/홍성란 2016. 7. 5. 23:01
허수아비 기우는 부여 어디 논두렁에 두 팔 벌려 욕심껏 둥그런 금을 긋고 이만큼, 내 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지 그런 세월은 흘러 그만큼은 가지신 걸까 ‘아주까리 선창’ 구슬픈 곡조에 담아 어머니 참아온 여든두 해 속말을 하는 거야 그만 하면 좋겠다, 저 노래에 해 저물어 따라하고 싶지 않은 노래는 천리를 따라와 여기가 타향 부두라면 그 고향 어디일까 온다는 기별도 없이 기대어선 나달은 가고 둥그런 금 다시 긋지 않는 가뭇한 산비탈에 구절초 하얀 꽃무리도 시월바람에 휘는 목 (그림 : 김규봉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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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 수크령 노래시(詩)/홍성란 2016. 7. 5. 23:00
희미한 그대 체취 실리는 천변에 와 고마리 기우는 꽃길 너울너울 걸었나 봐요 잘 번진 토끼풀처럼 나도 너울 번져서 번지는 풀꽃 하나 손가락 반지 짓고 달개비 꽃빛하늘 가리키며 웃었나 봐요 누군가 여기 보라고 들릴 듯 말 거는데 그대 분망한 거처 그 바람이 일렁이다 여기 보아 여기 보아 손 흔드는 거였나 봐요 언덕엔 수크령 무리 넘실 물결지어 밀리는데 수그렸다 들었다 낟알 익어가는 내음으로 그대가 온다는 걸 고추잠자리도 아는가 봐요 몸으로 누른 몸짓으로 이내 올 걸 아는가 봐요 수크령 :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의 여러해살이 풀길갱이, 랑미초(狼尾草)라고도 한다. 양지쪽 길가에서 흔히 자란다. 높이 30∼80cm이고 뿌리줄기에서 억센 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잎은 길이 30∼60cm, 나비 9∼15mm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