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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내려놓고
죽을 힘 다해 피워놓은
꽃들을 발치에 내려놓고
봄나무들은 짐짓 연초록이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는
맑은 노래가 있지만
꽃 지고 나면 봄나무들
제 이름까지 내려놓는다.
산수유 진달래 철쭉 라일락 산벚 --
꽃 내려놓은 나무들은
신록일 따름 푸른 숲일 따름
꽃이 피면 같이 웃어도
꽃이 지면 같이 울지 못한다.
꽃이 지면 우리는 너를 잊는 것이다.
꽃 떨군 봄나무들이
저마다 다시 꽃이라는 사실을
저마다 더 큰 꽃으로 피어나는 사태를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지지 않는다.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고
더 큰 꽃을 피워낸다.
나무는 꽃이다.
나무는 온몸으로 꽃이다.(그림 : 김현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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