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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는 밖을 생각하고 밖에서는 먼 곳을 더듬고 있으니
나는 당신을 모르는 게 맞습니다
비 맞으면서 아이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약속이라고,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물은 비를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나 봐요
그런 은유라면
나는 당신을 몰랐다는 게 맞습니다
모르는 쪽으로 맘껏 가던 것들
밖이라는 원망
밖이라는 새소리
밖이라는 아집
밖이라는 강물
조금 먼저 당신을 놓아주었다면 덜 창피했을까요
비참의 자리에 대신 꽃을 둡니다
제라늄이 창가를 만들었다는 거
창가는 이유가 놓이는 곳이라는 거
말 안 해도 지키는 걸 약속이라 하지요
늦었지만 저녁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저녁에게 이르도록 하겠어요
여름, 비, 안개, 살 냄새
화분을 들이며 덧문을 닫는 시간에 잠시 당신을 생각합니다
흔들림도 이젠 꿈인데
닫아두어도 남는 마음이란 게 뭐라고
꽃은 붉고
비 맞는 화분에 물도 주면서 말입니다
(그림 : 이임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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