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규리 - 모래시계
    시(詩)/이규리 2020. 8. 22. 15:23

     

    뒤집어지지 않으면 나는 그를 읽을 수 없어

    뒤집어지지 않으면 노을은 수평선을 그을 수 없어

    그리고 무덤은 이름들을 몰라

     

    폭우가 유리지붕을 딛고 지나가면

    장면들은 뒤집어지지

    편견은 다시 뒤집어지지

     

    간곡히 전심으로, 이런 건 더욱더 뒤집어지지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밤이 많았다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걸 열 번 더 해도

    그냥 문을 열 수는 없었지

    혁명은 문이 아니었지

     

    설명을 길게 하고 온 날은 몸이 아팠다

     

    애인들은 더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사하지 않아야 한다

     

    뒤집어진 이후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멀리 두기로 한다

     

    때가 되기도 전에 누군가는 성급히 몸을 뒤집었고

    또 누군가는 습관처럼 그걸 다시 뒤집고

    이후는 늘 무심하니까

    모래가 입을 채우고 나면

    조금은 다른 걸 생각할지 모르니까

    제 위치를 몰라

    우리는 슬프게도 늘 뒤집어지는 중이니까

    (그림 : 조선아 화백)

     

    '시(詩) > 이규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리 - 한낮의 카페  (0) 2021.05.31
    이규리 - 이후  (0) 2020.12.31
    이규리 - 관광버스  (0) 2019.10.05
    이규리 - 등  (0) 2019.10.05
    이규리 - 보수동 헌책방 골목  (0) 2019.10.05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