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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규리 - 이후
    시(詩)/이규리 2020. 12. 31. 12:00

     

    봄은 오는 게 아니야 가고 있는 거야

    그러니

    손목은 너무 세게 잡지 말고

    갈 때 놓아주도록 살며시

     

    살며시, 라는 말 울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당신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빽빽한 숲에서도 한눈에 드는 나무가 있지

    놓아준 나무

    놓아준 손목

    시끄러운 곳에서도 뒤돌아보게 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놓아준 것이야

     

    그 소리 목소리도

    가고 있는 거

    원했던 건 가고 있는 거

     

    가고 있는 건 고요가 되겠지

    비유 너머에 있는 그것

    너머라는 말도 울고 싶은 말이었는데

    거기 알 수 없는 그늘이 있지

     

    느릅나무 분재는 겨울에도 가득 초록 잎을 달고

    놓아줄 때를 잊고서

    오래 머무는 건 정말 무서웠는데

     

    쓸쓸하게도 머무는 사이 우는 법을 알아갔을 것이다

     

    나무가 풍경에서 나갈 수 있도록

    손목이 약속에서 나갈 수 있도록

    (그림 : 강정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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