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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오는 게 아니야 가고 있는 거야
그러니
손목은 너무 세게 잡지 말고
갈 때 놓아주도록 살며시
살며시, 라는 말 울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당신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빽빽한 숲에서도 한눈에 드는 나무가 있지
놓아준 나무
놓아준 손목
시끄러운 곳에서도 뒤돌아보게 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놓아준 것이야
그 소리 목소리도
가고 있는 거
원했던 건 가고 있는 거
가고 있는 건 고요가 되겠지
비유 너머에 있는 그것
너머라는 말도 울고 싶은 말이었는데
거기 알 수 없는 그늘이 있지
느릅나무 분재는 겨울에도 가득 초록 잎을 달고
놓아줄 때를 잊고서
오래 머무는 건 정말 무서웠는데
쓸쓸하게도 머무는 사이 우는 법을 알아갔을 것이다
나무가 풍경에서 나갈 수 있도록
손목이 약속에서 나갈 수 있도록
(그림 : 강정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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