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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규리 - 관광버스
    시(詩)/이규리 2019. 10. 5. 15:13

     

    세 사람 건너면 내게 마이크가 올 차례다
    단풍 진 바깥에 눈을 주고 있어도
    귀는 노랫가락에 딸려간다
    무량수전, 부석, 선묘, 닫집……
    이런 단어 몇 개
    가랑잎처럼 따라오다
    남행열차와 소양강에 휩쓸려가버린다
    사뭇 교양적이다가도 돌아가는 길에서는
    약속한 듯 모두 급해진다
    금방 일치가 된다
    생은 늘 뒤에서 덜미를 낚아채니
    못 이긴 척 질펀하게 풀어야 할지

    차창 밖 멀리 웅크린 산등성이
    몇 번 넘고 싶었다
    넘어야 할 이유는 많았다, 저 능선들
    저녁밥 굶고 모로 누운 가족 등허리 같아
    슬쩍 커튼을 가린다
    다시 생의 마지막을 소진하듯
    헐거운 나이가 허용하는 고성과 방가
    외로웠구나, 궂었구나,
    돌아보면 어여쁜 것들 천지에서
    오늘 함께 젖어보는 거다
    가로수 아래 흥건히 떨어지는 단풍잎들도
    소진한 것 아니냐
    중얼거리는데
    어둠처럼 빚쟁이처럼 덜컥,
    코앞에 마이크가 도착했다

    (그림 : 고재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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