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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순덕 - 메밀꽃 필 무렵시(詩)/시(詩) 2022. 7. 9. 17:36
메밀꽃 지천으로 흩뿌려논 봉평 엄마의 고향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목놓아 섧게 울고 싶던 곳 어머니 몸속에서 내가 나왔고 나의 껍질인 엄마의 고향 그러기에 자주 찾고픈 또 하나의 고향 삶이 서럽고 야속할 때면 봉평 입구부터 메밀꽃 아늑히 양탄자 삼아 쉬고 싶어라 앞 밭에 냉이꽃이 만개하였을 때 메밀꽃인 양 착각하여 슬프게 웃으며 찍었던 한 장의 사진 하- 서러워 올려다본 하늘에 먹다 만 빵 조각처럼 귀퉁이 잘려 나간 일그러진 하얀 달 메밀꽃 무늬의 고무줄 치마 속에 어머니 한 풀어놓은 채 내 괴롬마저도 얹고픈 마음으로 내 마음 냇가에 절절히 풀면 바다처럼 파랗게 흘러갈 것만 같은데 어머니 그리운 맘 흙에 내리면 하얗게 지새워 메밀꽃 될까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이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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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주 - 무진장 버스시(詩)/시(詩) 2022. 7. 8. 22:01
칡뿌리처럼 주름이 엉긴 칠순을 훌쩍 넘긴 할아배가 작아져서 이제 아기가 되어가는 저승꽃 만발한 할배더러 ㅡ 어디 다녀오시능규? ㅡ 지름집, 지름 짜러 왔어 ㅡ 올해 어떻게 되능규? ㅡ 및 살 먹었나구? 멧쌀 찹쌀 다 묵어부렀어. ㅡ 한 바꾸 돌았지유? ㅡ 쬐금만 있으면 한 줄 되야, 한 줄, 아이구 얼렁 오는 디로 가야 쓰것는디…. ㅡ 뭘류, 오래오래 사시면서 돈도 다 쓰고 가셔야쥬 ㅡ 돈? 큰아들이 뭐 한다구 자꾸 빼가 ㅡ 약주도 하셔야쥬 ㅡ 술? 여즉 못 배웠어, 갈쳐줄려? 슬슬 배워보게 ㅡ 맨날 밥만 자실 수 있간유, 먹는 건 죄 한번씩 자시고 가야쥬 창밖 바라보던 라면 머리 할매들 무진장 무진장 미소 번진다 (그림 : 고재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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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중림동 파출소시(詩)/시(詩) 2022. 7. 6. 21:19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밤 덜컹, 출입문이 열리더니 쓰레기봉투 하나 날아들었다 얼핏 보기에 어느 곳에서 유용하게 쓰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만 같아 보였는데 서부역 주변에 오래 머문 탓에 가볍다 대로변을 날아다니는 것은 불법이므로 당직은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바로 묻는다 이름이 뭐냐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느냐고 무슨 죄를 짓고 날아다니느냐고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며 내력을 캐는데 열중이다 같이 먹고 살자며 당직은 나직이 속삭이며 어르고 달랜다 잘못 날아들어 왔으니 1초만 여기서 내보내 주면 귀찮게 하지 않고 바로 죽어버리겠다고 도로 호통친다 바람 따라 날아들어 왔지만 한 번 들어오면 이름을 밝혀야 하는 곳 당직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다시 한 번 정중히 묻는다 이름이 뭐냐 쓰레기라니까요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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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이 - 왜가리에게 묻다시(詩)/시(詩) 2022. 7. 6. 21:15
물 위의 기름처럼 홀로 선 나는 물 속 제 그림자가 전부인 왜가리에게 묻는다 너는 깊은 숲의 휘파람새 곤줄박이 동박새가 궁금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물그림자에서 세상을 건져올리는지 나는 바닷가 외진 구석에 앉아 슬픔을 마신 적이 있다 손에 든 꽃다발 빼앗겨도 나를 돌멩이 삼아 뭉개고 달아나도 세상의 물 위를 너처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 너와 나는 일피만파를 헤치기엔 가슴벽이 너무 얇다 휑한 손바닥, 멍든 허벅지 만지면서도 슬픈 눈길은 다시 물 밖을 기웃댄다 세상을 날마다 지우고 서 있는 너에게 나는 견디는 법을 묻는다 (그림 : 고찬용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