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송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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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 나팔꽃시(詩)/송수권 2014. 10. 18. 19:35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鐘(종)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그림 : 정정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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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 깡통식혜를 들며시(詩)/송수권 2014. 8. 24. 07:38
오매 시방 저 새끼가 누당가 내 새끼 아녀? 왜 그랬을까. - 외할머니 눈에 눈물 글썽 고이는 거 이십 리 까막길을 산바람 강바람 잰바람 휘젓니라 얼매나 추었냐? 왜 그랬을까. - 외할머니 눈에 눈물 글썽 고이는 거 이게 누당가 내 새끼, 어서 오니라 부숨박으로 홑창도 까맣게 절은 미영 이불 감싸주며 몇 번이나 내 궁댕이 다대던 손. 왜 그랬을까. - 외할머니 눈에 눈물 글썽 고이는 것 따순 짐 나는 한동자 퍼오며 아가, 아가, 체하련 숭늉부터 마셔라 해설풋 새참 때도 다 지났건는디 얼마나 배고팠냐? 흡빡 묵어라, 흡빡. 왜 그랬을까 - 외할머니 눈에 눈물 글썽 고이는 거. (그림 : 윤문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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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 숨비기꽃 사랑시(詩)/송수권 2014. 8. 21. 14:18
칠월의 제주 바닷가 숨비기꽃 숨비기꽃 피어나면 섬 계집들 사랑도 피어나리 작열한 햇빛 입에 물고 전복을 따랴, 미역을 따랴 천 길 물 속 물이랑을 넘는 저 숨비기꽃들의 숨비소리 아직 바다가 쪽빛이긴 때이르고 오명가명 한 소쿠리씩 마른 꽃을 따다가 베갯솜을 놓는 눈물 끝을 비친 사랑아 그 베개 모세혈관 피를 맑게 걸러서 멀미 끝에 오는 시력을 다시 회복하고 저승 속까지 연보라 등(燈)을 실어놓고 밝은 눈을 하나씩 얻어서 돌아가는 시집갈 땐 이불 속에 누구니 약(藥)베개 하나씩 숨겨가는 그 숨비기꽃 사랑 이야길 아시나요. 숨비소리 : 해녀가 잠수 후 수면에서 고단 숨을 휘파람처럼 쉬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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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 서산 갯마을시(詩)/송수권 2014. 8. 21. 14:15
저 갯마을 흐드러진 복사꽃잎 다 질 때까지는 이 밤은 아무도 잠 못 들리 한밤중에도 온 마을이 다 환하고 마당 깊숙이 스민 달빛에 얼룩을 지우며 성가족(聖家族)들의 이야기 도른도른 긴 밤 지새리 칠칠한 그믐밤마다 새조개들 입을 벌려 고막녀들과 하늘 어디로 날아간다는 전설이 뻘처럼 깊은 서산 갯마을 한낮엔 굴을 따고 밤엔 무시로 밀낙지국과 무젓을 먹는 아낙들 뽀얀 달무리도 간월도 너머 지고 말면 창창한 물잎새들이 새로 피듯 이 밤은 아무도 잠 못 들리 저 갯마을 복사꽃잎 다 흩날릴 때까지는. (그림 : 이완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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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 우리들의 사랑노래시(詩)/송수권 2014. 8. 21. 14:07
남풍 불어 미루나무밭 물 푸는 소리 나거든 직녀여, 그대 산 아래 오두막 짓고 그 미루나무 가지들 몸을 굽혀 북쪽 산마루에까지 허옇게 허옇게 속잎새 날려오는 날 나는 그곳에 초막을 짓세 하늘 두고 맹세한 우리들의 사랑..... 철따라 부는 남풍과 북풍 남풍에 미루나무 속잎새들 몸을 굽혀 오거든 그대 오는 걸음새 내 마중 나가고 북풍에 미루나무 겉잎새들 팔팔거리며 남쪽으로 몸을 굽혀 가거든 직녀여, 그대 내 발걸음 마중 나오게 하늘 두고 맹세한 우리들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