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성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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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쩔쩔시(詩)/성선경 2018. 7. 13. 23:40
청사포 청사포 나는 사랑을 말하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청사포 청사포 푸른 뱀이면 어떻고 푸른 모래면 어떠랴 나는 자꾸 사랑에 눈이 가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천년에 한 번 백년에 한 번 달이 기우는데 청사포 청사포 물결이 밀리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청사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달맞이길(달맞이고개) 아래에 있는 작은 포구이다. 원래의 한자명은 뱀‘사(蛇)’자가 들어간 청사포(靑蛇浦)였으나 언제부터인가 푸른 모래라는 뜻의 청사포(靑沙浦)로 바뀌었다. 난류와 한류가 섞이는 동해의 남쪽 끝·남해의 동쪽 끝에 있어, 옛날부터 물고기가 풍부하고 질 좋은 횟감이 많이 잡혔다. 포구의 방파제는 늘 낚시꾼들로 붐비고, 주변엔 횟집과 붕장어구이집·숯불조개구이촌이 즐비하다. 망부송(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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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미루나무에 노을이 붙들어 매며시(詩)/성선경 2018. 7. 13. 23:37
그대 그러지 마시게 해가 진다고 마음도 노을이 들까 깔고 앉은 바위에서 엉덩이를 들어 툭툭, 돋아나는 별들을 가리키며 돌아서면 아직도 아쉬운 노을 같은 사람아 그대 그러지 마시게 해가 산을 넘는다고 그리 쉬 잊힐까? 나는 아직도 지는 해를 붙잡아 뜨거운 손 놓지 못하는데 그대 그러지 마시게 어이 무장한 들꽃은 손을 흔드는가? 그대 부디 그러지 마시게 한 잔 술에도 붉어지는 얼굴 아직 다 보여주지 못했는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걸음을 옮기는 사람아 마음의 귀를 잡으면 첩첩하고 생각의 눈을 잡으면 회회한데 나는 미루나무 등걸에 해를 묶고 손으로 저 하늘을 다 가려 보라 별 돋는다, 그대 말씀 가리고 싶은데.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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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뒤통수시(詩)/성선경 2018. 7. 13. 23:34
보리밭 둥지 속의 종다리 알처럼 남들에게는 절대 들키지 않으리라 꼭꼭 숨겨뒀다고 생각하지만 그 남들에겐 늘 허점으로 들키는 곳 이마를 꼿꼿이 세우고 꽁꽁 큰소릴 친 날이면 개미 몇 마리 슬금슬금 기어 다니며 가려운 곳 누가 이렇게 허허로운 곳에 이 큰 과녁을 만들어 두었을까 생각하면 번개가 번쩍이고 폭풍우가 몰려오는 곳 뒤통수, 하고 입술을 오물거리면 퉁소 한 가락이나 피리소리라도 들릴 것 같지만 늘 믿음이 깨어지고 터지는 곳 아 아픈 곳. (그림 : 신제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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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시(詩)/성선경 2018. 7. 13. 22:42
당신은 벌써 가고 나의 칠월도 끝이 났습니다 까마중 까마중 하고 입속에서 우물거리면 왠지 까만 동자승이 생각나 꼬마중 꼬마중 하게 되지만 당신이 떠나간 길의 뒷덜미를 오래도록 쳐다보지요, 그 길섶을 깊이 들여다보지요, 고개를 숙이고 풀숲에 두루마기가 차름한 방아깨비나 찾아보지요, 당신은 벌써 떠나고 나의 칠월은 이미 끝났는데 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왠지 나도 동자승같이 외로워져서 까마중 까마중 입속으로 우물거리면 왠지 까만 동자승이 생각나 꼬마중 꼬마중 하게 되지만 당신은 벌써 가고 나의 칠월도 끝이 났습니다 당신이 떠나간 길섶 뒷덜미의 깊이만큼 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그렇게 익어 갈 때. (그림 : 이현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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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가는 봄을 붙잡으며시(詩)/성선경 2017. 9. 13. 09:25
저 버들 꺾고 싶네. 네 손모가지 부러질 게다. 그래도 저 능청 휘늘어진 버들 꺾고 싶네.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다고 저 능수버들 휘늘어진 가지 꺾지 못하겠냐? 손모가지 비틀어진대도 저 버들 꺾고 싶네. 담장 밖 저 꽃 좀 보소. 나는 언듯 손이 움츠러들지만 내 마음 벌써 저 꽃 꺾어들고 희희낙락 코끝에 내음을 맡고 볼비빔을 하고, 네 이놈 네 손모가지 부러질 게다. 그래도 꺾고 싶네.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대서야, 움츠러드는 내 손을 마음이 끌고 가 볼비빔을 하는 능수야 버들 휘늘어진 가지 담장 너머 저 환한 꽃 잡지도 못하고 봄날이 가네. (그림 : 한순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