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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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제비꽃 사설시(詩)/곽재구 2019. 1. 17. 09:00
네 이름이 뭐냐 땅끝 가는 완행버스 길 바랑 걸치고 걷다 풀 언덕에 앉아 물어보면 솜털 보송보송한 자주색 꽃들이 입을 모아 사 랑 부 리 꽃 우리나라 사람들 싸우지 말고 용서하며 맑고 고운 희망 나라 통일 나라 얼른 세우라고 입모아 사 랑 부 리 꽃 네 이름이 뭐냐 귤동 가는 도암만 시오리 길 개울물에 보리 미숫가루 풀다 물어보면 솜털 보송보송한 자주색 꽃들이 입을 모아 도 끼 꽃 우리나라 사람들 가슴의 슬픔들 몽땅 털어버리고 아름답고 빛나는 세상 들판 곳곳에 세우라고 입모아 도 끼 꽃 (그림 : 이청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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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보성강시(詩)/곽재구 2018. 1. 26. 16:18
산벚꽃 핀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오리나무로 엮은 단정한 정자가 있다 육자배기를 부르는 노인은 남평 문씨인데 육십 평생 유치장 대장간에서 보습 날과 돌쩌귀를 두드리며 살았다 막내딸 옥님이는 나와 동갑 열한 살에 소리꾼 제자가 되어 보성으로 갔다 열다섯 되던 봄날 나는 보성으로 가는 버스를 홀로 탔는데 강물이 파랗고 찔레꽃이 천지 사방에 꽃향기를 날렸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 빈 도시락 허리에 묶고 쑥대머리를 부르던 그 아이 꽃 향기 속에 환히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보성강(寶城江) : 길이 126.75㎞. 섬진강의 제1지류이다.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 제암산 남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화강천이라 불리며,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장흥군에서 장평천, 보성읍 북쪽에서 노동천과 합류하고 미력면과 겸백면에서 보성강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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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절망을 위하여시(詩)/곽재구 2017. 6. 28. 18:40
바람은 자도 마음은 자지 않는다 철들어 사랑이며 추억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싸움은 동산 위의 뜨거운 해처럼 우리들의 속살을 태우고 마음의 배고픔이 출렁이는 강기슭에 앉아 종이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절망의 노래를 불렀다 정이 들어 이제는 한 발짝도 떠날 수 없는 이 땅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머리 위를 짓밟고 간 많고 많은 이방의 발짝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이웃에게 눈인사를 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웃을 위하여 마음을 불태우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서 두려움에 떠는 눈짓으로 술집을 떠나는 사내들과 두부 몇 모를 사고 몇 번씩 뒤돌아보며 골목을 들어서는 계집들의 모습이 이제는 우리들의 낯선 슬픔이 되지 않았다 사랑은 가고 누구도 거슬러오르지 않는 절망의 강기슭에 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이 땅의 어둠 위에 닻을 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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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그리움에게시(詩)/곽재구 2017. 6. 28. 18:38
그대에게 긴 사랑의 편지를 쓴다 전라선, 지나치는 시골역마다 겨울은 은빛 꿈으로 펄럭이고 성에가 낀 차창에 볼을 부비며 나는 오늘 아침 용접공인 동생녀석이 마련해준 때묻은 만원권 지폐 한 장을 생각했다 가슴의 뜨거움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오래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건축공사장 막일을 하면서 기술학교 야간을 우등으로 졸업한 이등기사인 그놈의 자랑스런 작업복에 대해서 절망보다 강하게 그놈이 쏘아대던 카바이드 불꽃에 대해서 월말이면 그놈이 들고 오는 십만원의 월급봉투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팔년이나 몸부림친 대학을 졸업하는 마지막 겨울 그대에게 길고 긴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얼굴 한번 거리에서 마주친 적도 어깨 나란히 걸음 한번 옮긴 적 없어도 나는 절망보다 먼저 그대를 만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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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구진포에서시(詩)/곽재구 2017. 6. 28. 18:36
몸푼 강심에 돌들은 모여 무슨 꿈을 꾸는지 지난 겨울 못다 운 울음이나 가슴의 금빛 나는 햇살로 엮어 물먹은 봄빛이 다리 아래 떨어진 꽃잎들을 다시 서러웁게 울리지는 않는지 한달음에 자운영 강둑길을 달려 그리움보다 먼저 떨어진 꽃잎들이 밀려오는 다릿목 아래 내 스무살 적 보리피리와 함께 서 있으면 사랑이여, 속살 푸른 강물 속에서도 그리움은 더욱 푸르러 물이끼로 설레고 마음보다 먼저 몸이 작아져서 잊혀진 얼굴들조차 강물에 풀어 다시 올릴 수 없을 때 저 슬픔 많은 은모래 한 알에도 이제는 어쩌지 못할 세상의 서러운 한들이 가슴의 불들로 물위를 흘러가겠네. 구진포(九津浦) :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영산강에 있는 옛 나루터.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하여 '구부나루' 또는 '구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