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홍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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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 망종(芒種)시(詩)/홍해리 2018. 6. 12. 09:19
고향집 텃논에 개구리 떼 그득하것다 울음소리 하늘까지 물기둥 솟구치것다 종달새 둥지마다 보리 익어 향긋하것다 들녘의 농부들도 눈코 뜰 새 없것다 저녁이면 은은한 등불 빛이 정답것다 서로들 곤비를 등에 지고 잠이 들것다. 망종(芒種) : 소만과 하지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양력 6월 6일 무렵이다. 망종은 논보리나 벼 등 씨앗에 수염이 달린 곡식을 파종한다는 뜻으로, 태양의 황경이 75°인 때이다. 이 시기가 끝날 때까지 밭보리를 수확하여 햇보리를 먹게 되며,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므로 농사일이 가장 바쁜 시기이다. 곤비(困憊) :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서 매우 고단함 (그림 : 박구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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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 꽃무릇 천지시(詩)/홍해리 2017. 12. 21. 09:31
우리들이 오가는 나들목이 어디런가 너의 꽃시절을 함께 못할 때 나는 네게로 와 잎으로 서고 나의 푸른 집에 오지 못할 때 너는 내게로 와서 꽃으로 피어라 나는 너의 차꼬가 되고 너는 내 수갑이 되어 속속곳 바람으로 이 푸른 가을날 깊은 하늘을 사무치게 하니 안안팎으로 가로 지나 세로 지나 가량없어라 짝사랑이면 짝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사랑이라서 나는 죽어 너를 피우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가 나란히 누워보지도 못하고 팔베게 한 번 해 주지 못한 사람 촛불 환히 밝혀 들고 두 손을 모으면 너는 어디 있는가 마음만, 마음만 붉어라. (그림 : 장용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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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 연가시(詩)/홍해리 2017. 12. 4. 16:32
- 지아(池娥)에게 맷방석 앞에 하고 너와 나 마주 앉아 숨을 맞추어 맷손 같이 잡고 함께 돌리면 맷돌 가는 소리 어찌 곱지 않으랴 세월을 안고 세상 밖으로 원을 그리며 네 걱정 내 근심 모두 모아다 구멍에 살짝살짝 집어넣고 돌리다 보면 손 잡은 자리 저리 반짝반짝 윤이 나고 고운 향기 끝 간 데 없으리니 곰보처럼 얽었으면 또 어떠랴 어떠하랴 둘이 만나 이렇게 고운 가루 갈아 내는데 끈이 없으면 매지 못하고 길이 아니라고 가지 못할까 가을가을 둘이서 밤 깊는 소리 쌓이는 고운 사랑 세월을 엮어 한 생(生)을 다시 쌓는다 해도 이렇게 마주 앉아 맷돌이나 돌리자 나는 맷중쇠 중심을 잡고 너는 매암쇠 정을 모아다 서름도 아픔까지 곱게 갈아서 껍질은 후후 불어 멀리멀리 날리자 때로는 소금처럼 짜디짠 땀과 눈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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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 그늘과 아래시(詩)/홍해리 2017. 9. 16. 23:17
그늘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늘이 그늘그늘 드리워진 곳은 어디인가 그늘은 늘 아래 존재한다 그늘은 미끄러워 잡히지 않는다 그런 걸 알면서도 나는 '그늘 아래'라고 겁없이 쓴다 그늘에 아래가 있는가 그러면 그늘의 위는 어디인가 그래 어쩌자고 나는 그늘 아래로 파고드는가 그냥 그늘 속으로 기어들지 않는 것인가 그늘은 무두질 잘 해 놓은 투명한 가죽이다 그늘에서 가죽에 막걸리를 먹여야 좋은 소리가 난다 그늘의 소리가 배어 있다 나온다 그늘북은 슬픔이다 그게 아니다 그것은 젖어 있는 팽팽한 희망이다 그래 나는 늘 그늘이고, 아래에 있고 싶다. (그림 : 노태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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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 봄, 날아오르다시(詩)/홍해리 2017. 3. 2. 23:52
두문불출의 겨울 적막의 문을 두드리던 바람 부드러운 칼을 숨기고 슬그머니 찾아왔다 아침 밥물을 잦히는 어머니의 손길로 물이 오르는 들판 어디선가 들려오는 칼질소리 금세 봄은 숨이 가빠 어지럽다 오색찬란 환하다, 망연자실 바라보면 울고 싶어지는 희다 못해 푸른 매화꽃 저 구름 같은 입술 젖어 있는 걸 보라 나무들마다 아궁이에 모닥불 지피고 지난 삼복에 장전한 총알을 발사하고 있다 봄 햇살은 금빛 은빛으로 선다 봄은 징소리가 아니라 꽹과리 소리로 온다 귀가 뚫린 것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꽃집에 온 것마다 서로 팔을 걸고 마시다 목을 끌어안고 꿀을 빨고 있다 무릎에 앉은 채 껴안고 마셔라! 마셔라! 입에서 입으로 꽃술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폭탄주에 금방 까무러칠 듯 봄이 흔들리고 있다 세상에 어찌 끝이 있다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