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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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 감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시(詩)/유안진 2017. 8. 5. 22:01
섶다리로 냇물을 건너야했던 마을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야했던 동네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붉어지게하는 아잇적 큰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가느라고 장마끝 무너지다 남은 토담위에 걸터앉은 몸 무거운 호박덩이 보름달보다 밝은 박덩이가 뒹구는 방앗간 지붕에는 빨간 고추밭 어느것하나라도 피붙이가 아닐수없는것들 열린채 닫힌적 없는 사립문을 들어서면 처마밑에 헛기침 사이사이 놋쇠 재터리가 울고 안마당 가득히 말라가는 곶감 내음새 달디단 어머니의 내음새에 고향은 비로소 콧잔등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이름 사라져가는 모든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고 허물어져가는것은 모두가 눈물겨울것 비록 풍요로움일지라도 풍성한 가을 열매일지라도 추억처럼 슬픈것, 슬퍼서 아름다운것, 아름다워서 못내 그립고 그리운것,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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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 커피 칸타타시(詩)/유안진 2017. 4. 2. 09:13
꿈도 없이 뉘우침도 없고 잠까지도 없는 하루의 끝에서 마지막 한 걸음 떼어놓다 말고 한번이라도 뒤돌아보게 될까 봐 한 잔을 마시고 눈 딱 감고 뛰어내리려고 또 한 잔을 마시고 거기 정말로 잠이 있나 확인하려고 한 잔을 더 마시고 잠 속으로 돌진할 마지막 준비로 머그잔 절반을 커피가루로 나머지 절반은 냉수로 채우지 캄캄한 잔 속에 풍덩 뛰어들면 케냐 에콰도르 에티오피아의 어느 커피 농장으로 직행하게 되지 너무 빨리 달려가서 뜨는 해가 지는 줄도 모른 채 까맣게 새까맣게 잠이 되고 말지 까만 손톱으로 커피원두를 따는 작고 깡마른 소녀가 되지 가지마다 닥지닥지매달린 작고 동그란 원두열매가 되어버리지 (그림 : 서정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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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 때로는 한눈팔아도 된다시(詩)/유안진 2016. 9. 18. 20:09
선생님, 색칠이 자꾸 금 밖으로 가요 괜찮다,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러겠냐 뻥튀기 구경하다 지각했어요 괜찮다, 지금 한눈팔지 않으면 언제 그러겠냐 길가의 강아지풀 꼬리가 패였는지 개미와 송장메뚜기를 구경해도 된다 낮달과 구름을 쳐다봐도 된다 소나기에 흠뻑 젖어 와도 된다 쇠똥구리네 집이 쇠똥인지 땅 구멍인지 놀며 구경하다가 와도 된다 어디나 언제나 학교이고 공부시간 누구나 무엇이나 선생님이란다 때로는 길 밖에서 더 잘 자랄 거야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그럴 시간 있겠느냐. (그림 : 이청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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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 빨래꽃시(詩)/유안진 2016. 8. 15. 22:29
이 마을도 비었습니다 국도에서 지방도로 접어들어도 호젓하지 않았습니다 폐교된 분교를 지나도 빈 마을이 띄엄띄엄 추웠습니다 그러다가 빨래 널린 어느 집은 생가(生家)보다 반가웠습니다 빨랫줄에 줄 타던 옷가지들이 담 너머로 윙크했습니다 초겨울 다저녁 때에도 초봄처럼 따뜻했습니다 꽃보다 꽃다운 빨래꽃이었습니다 꽃보다 향기로운 사람냄새가 풍겼습니다 어디선가 금방 개 짖는 소리도 들린 듯했습니다 온 마을이 꽃밭이었습니다 골목길에 설핏 빨래 입은 사람들은 더욱 꽃이었습니다 사람보다 기막힌 꽃이 어디 또 있습니까 지나와 놓고도 목고개는 자꾸만 뒤로 돌아갔습니다. 다저녁 때 : 저녁이 다 된 때 (그림 : 김종식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