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상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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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동춘 사까수단시(詩)/상희구 2015. 5. 10. 15:09
동춘 사까수단은 꼭 잊을 만한 때쯤 늦가을이면 신천(新川) 갱빈에 등장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사까수단의 단원들이 천막 한 모퉁이에 길길이 널어 놓았던 형형색색의 빨래들이었습니다 쌉싸리한 가을바람에 한껏 펄럭이던 빨래는 조금은 무거워 보이는 사까수단의 천막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저 머언 하늘 쪽으로 또한 높다란 천막 위에는 아득히 누마루를 만 들어 놓고 그 위로 악사(樂士)들이 늘어앉아 음악을 연주하곤 하는 것이었는데 압권은 경쾌하게 울 려 퍼지는 트롬벳 소리였습니다 이 트롬벳 소리 또한 사까수단의 천막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저 머언 하늘 쪽으로 사까수단이 떠나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갔을 때는 이미 사까수단은 사라져 버리고 천막 기둥을 뽑아낸 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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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두 손으로 부욱 찢어서 묵는 짐장뱁추짐치 잎사구 맛시(詩)/상희구 2015. 5. 10. 15:03
묻어논 짐장독 하나를 새로 헐었다고 동네 아낙, 대여섯이 대청마루 양지 쪼오에 오복히 모있다 모락모락 짐이 나는 방금 해낸 따신 보리밥이 한 양푸이 허슬허슬한 보리밥을 누리끼리한 놋숙깔에다가 북대산겉치 퍼담고는 온통 군둥내가 등청(登廳)을 하는 질쭉한 묵은 짐장뱁추집치 한 잎사구를 두 손으로 부욱 찢어서 똥구락키 따배이로 틀어 보리밥 우에다가 얹고는 뽈때기가 오볼티이겉치 미어터지두룩 아죽아죽 씹는데 그 맛이랑 기이 얼매나 기가 차던지 이때 망쿰은 사우가 꽃가매로 태야준다 캐도 싫고 늙은 배껕영감이 주착맞구로 초지역 나절도 안 되서 요대기 깔자 카는 것도 마카 기찮을 정도라 카이끼네 옛날에는 점심 나절이면 갖은 핑계를 갖다대어 이웃끼리 점심밥을 나누어 먹곤 했다. 김장 담그는 날, 된장 간장 담그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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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탑삭부리시(詩)/상희구 2015. 5. 10. 14:56
'아이고 야이야, 머리가 탑삭부리 겉구나 어서 가서 머리부터 깍고 온너라' 엄마가 주무이에 꼬개꼬개 여어났던 돈을 꺼내주셨는데 내가 머리 깍으로 가는 체하고 골목 끄티 가서 돈을 꺼내 밨디마는, 바로 저업데, 내가 유리 쪼가리, 헌 빙, 합째기 못 씨능 거, 백철, 알미뉴우무 겉은 폐물 조오 가주고 판 돈으로 엄마 생신날 짜장면 한 그릇 사 자시라고 디린 바로 그 돈이었다 그 돈은 내가 다 안다 돈에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 옆에 내가 호작질해 논 기림이 있었기 때무이다 이 돈은 엄마캉 내캉 서로 주고 받고 하면서 및 바꾸째 되돌아나오는지 모리겠다 나는 탑삭부리할배가 되더라도 머리로 안 깍기로 맹세를 했다 탑삭부리: 사전에는 탑삭나룻이 난 사람을 지칭한다고 되어 있으나 대구지방에서는 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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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추석대목장날시(詩)/상희구 2015. 5. 10. 14:50
갑재기 어데서 누군가가 '저게 보름달이 떴다!' 카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카고 보이끼네 안죽 보름달은 아이고 정확히 말해서 음력 팔월 열나흔날 저녁달이 동쪽에서 떠오리는데 큼지막한 세숫대야 맹쿠로 광파이 겉은 담황색의 달이 바야르허 이제사 마악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이다 비록 팔월 열나흔날 달이지만 이제 이밤 하로만 자마 팔월 대보름달이 될 끼잉끼네 달 가세 쪼오로, 쪼매라도 비이 문 자국이 전연 없이 큼지막하고 둥구리한 것이 팔월 대보름달이나 진배없다 휘영청 밝은 담황색의 은은한 달은 군데군데 거뭇거뭇한 것이 음영(陰影)이 짙었는데 정말 계수낭구와 옥도끼가 눈에 뷔이는 거 같았다 달은 흡시 연극무대의 무대 가분데 공중에 떠서 무대 군데군데를 비추듯이 마침 추석대목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고루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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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대구의 봄은시(詩)/상희구 2015. 5. 10. 14:35
대구의 봄은 칠성시장에 제일 먼저 찾아온다 칠성시장의 봄은 칠성시장 채소전에서 시작는다 배껕 날씨는 아즉 칩은데 발씨로 불노(不老),서촌(西村) 쪽서 쑥갓, 아욱이 들왔단다 중리(中里) 날뫼 쪽서 햇미나리, 정구지가 들오고 하빈(河賓) 동곡(東谷)서는 시금치, 건대가 들오고 경산(慶山) 압량(押梁)서는 낭개 가지가 들오고 청도(淸道) 풍각(豊角) 각북(角北)서는 풋고치, 오이가 들왔다 대구에 봄이 들어오는 초입인 파동(巴洞)의 용두방천(龍頭防川), 앞산 안지래이 쪽은 봄이 안주 뻐뜩도 않하는데 칠성시장에는 발씨로 봄이 난만(爛漫)하다 (그림 : 김의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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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쌈시(詩)/상희구 2015. 5. 10. 14:00
경상도 사람들 참 쌈을 좋아하는데 대구사람들은 더하다 잎사구가 넙덕넙덕한 야채로 손바닥에 필칠 만 하기마 하마 쌈을 싸재끼는데 쌈의 종류에는 대략 이렁 기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상추쌈, 쑥갓쌈, 뱁추쌈을 비롯해서 미나리쌈, 호박잎사구쌈, 우붕잎사구쌈 말쌈, 둥굴뱁추쌈, 취나물 겉은 산채山菜쌈 들깻잎쌈, 콩잎사구쌈, 팥잎사구쌈, 군둥네 나는 짐장뱁추짐치 빨아서 싸 묵는 짐장뱁추짐치 잎사구쌈 정월 대보름 시절 음석인 찰밥을 싸서 묵는 아주까리 잎사구쌈, 꽁치과미기로 사서 묵는 미역줄기쌈 등이 있다. 더하다: 더 심하다는 뜻 넙덕넙덕한 : 넓직넓직한 필칠 만하기만 하마: 펼칠 만하기만 하면 (그림 : 이두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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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해깝다시(詩)/상희구 2015. 5. 10. 13:48
엄마가 아파서 병석에, 한군데만 자리보전하고 기신 지 너무 오래 돼서, 자리를 옆으로 한분 옮기볼라꼬 엄마를 바짝 끼안았는데 아이고마, 엄마 몸띠가 그단새 마린 장작깨비망쿰이나 너무 해깝아져서 깜짝 놀랬다 그 순간, 내가 갓 너댓 살즘 묵었을 때, 엄마가 나를 등더리에 업어주시면서 흥얼대셨던 그때 득의에 가득차 있던 엄마의 음성이 나의 뇌리를 후리쳤다 -아이고, 우리집 똥짱구이가 이맇게 무겁아서 우짜꼬, 이라다가 에미 장디 다 뿌라 놓겠구마는! 해깝다: 가볍다 몸띠: 몸통 그단새: 그 사이에 등더리: 등 똥짱구이: 똥장군, 똥오줌을 져다 나를 때 쓰는 나무로 만든 용기. 여기서는 엄마가 자식에 대한 극진한 애칭 이라다가 에미 장디 다 뿌라 놓겠구마는!: 이러다가는 어미 허리 다 부러뜨려 놓겠구마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