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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동춘 사까수단시(詩)/상희구 2015. 5. 10. 15:09
동춘 사까수단은 꼭 잊을 만한 때쯤
늦가을이면 신천(新川) 갱빈에 등장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사까수단의
단원들이 천막 한 모퉁이에 길길이 널어
놓았던 형형색색의 빨래들이었습니다
쌉싸리한 가을바람에 한껏 펄럭이던 빨래는
조금은 무거워 보이는 사까수단의 천막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저 머언 하늘 쪽으로
또한 높다란 천막 위에는 아득히 누마루를 만
들어 놓고 그 위로 악사(樂士)들이 늘어앉아 음악을
연주하곤 하는 것이었는데 압권은 경쾌하게 울
려 퍼지는 트롬벳 소리였습니다
이 트롬벳 소리 또한 사까수단의 천막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저 머언 하늘 쪽으로
사까수단이 떠나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갔을 때는 이미 사까수단은 사라져 버리고
천막 기둥을 뽑아낸 휑한 구덩이만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사까수단을 늘상
따라다니며 목에 쇠오랏줄을 한 채, 남국(南國) 고향을
생각는지 늘 눈망울이 애잔했던 그때 벌써 늙었던
한 마리 원숭이였습니다
동춘(東春) 서커스단: 동춘 서커스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사가 오래 된 서커스단이다.
사까수란 말은 일본식 발음인데 그 시절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사까수, 사까수라고 해서 서커스란 말보다 훨씬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2, 3년에 한 번씩은 칠성동 신천(七星洞 新川) 강변에 공연을 하곤 했다.
갱빈: 강변
(그림 : 정서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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