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박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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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영 - 창 (窓)시(詩)/박종영 2014. 3. 10. 14:25
넒은 세상에는 수많은 눈이 옹기종기 창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창을 처음부터 만들어 놓고 비밀스런 얘기를 엿듣는 가슴 부푼 바람도 있습니다. 외로운 달빛은 새벽으로만 향긋한 풀 향기를 실어와 좁은 창문으로 밀어 넣으며, 애절한 사랑 얘기만 주워담아 창밖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가끔 창 밖에서는 빗나간 사랑과 앙큼진 이별과, 지루한 적막의 시간이 밤을 지키다가 설레어 흡족한 아침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모순으로 실패할수 없었던 날, 여리고 고운 싹으로 피어나는 푸른 잎의 행진이 창틈으로 스며들며 요염한 웃음도 놓고 갑니다. 창(窓)의 본질을 알아내는 일, 그거 기어이 소멸하지 않고 곱살스런 지혜의 창을 열어두는 임의 시간으로 조바심입니다. (그림 : 김순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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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영 - 남풍 때문에시(詩)/박종영 2014. 3. 10. 14:20
시하바다 무질러 오는 남풍이 요정(妖情)인 듯, 무심한 가슴에 두근두근 꽃수를 박음질한다. 슬그머니 치마끈 푸는 매화향기, 부러운 듯 봄볕이 분주하다. 시하(時河)바다 : 목포를 벗어나 외해로 나가는 큰바다 물살이 세지는곳 時河라고 쓰며 물 흐르는 시간을 뜻한다 바다 물살이 세기 때문에 통과하기 위해선 썰물 때나 밀물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을 보내는 곳이 시하바다목포에서 우수영으로 가기위해서는 썰물을 타야한다. 목포에서는 만조가 될 무렵에 배를 띄운다 (그림 : 김순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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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영 - 가을 서곡시(詩)/박종영 2014. 2. 4. 16:49
가을의 첫 노래를 듣는다 문풍지 우는 소리에 한 겹씩 옷을 치장하는 창문 밖으로 새벽바람이 서성댄다 동동한 여름 이겨낸 손끝마다 물들여진 봉숭아 꽃물 누구에게 보이고 싶어 밤을 새운 그리움이 금빛 햇살에 반짝인다 나는 무엇으로 이 가을을 대답할까? 담벼락에 등을 대면 서늘한 기운이 일어서고 귀향의 길에서 차진 열매 하나 없이 허망한 가을을 맞아야 하는지를 얻는 것과 버리는 것 모두 풍요하여 탐이 나는 세월 한 움큼 푸른 구름 잡아 툭툭 헹궈내면 가을꽃 향기는 한 줄 이별의 시를 쓴다 (그림 : 조영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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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영 - 여름, 청명한 소리 위를 걷다시(詩)/박종영 2014. 2. 4. 16:48
여름 산의 주인은 녹색의 울림이다 그 첫 번째 소리는 계곡의 물소리다 나뭇잎 부딪치는 풋풋한 소리 그것은, 산이 들려주는 두 번째 빛나는 청량제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산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것은 나무 틈에 숨어 아양 부리는 산새 울음소리, 그거 달콤한 연인의 메아리로 즐겁다 넉넉한 산의 가슴을 딛고 오르는 슬기찬 발걸음들, 고단한 삶이 산을 넘어가는 소리, 그토록 청명한 소리 위를 걷는 우리 모두 싱싱한 나무의 웃음으로 닮아가기 위해서다 골마다 생명의 소리로 우쭐대는 녹색의 몸짓들, 언제나 청초함으로 숲과 나무의 간격을 좁히는 바람의 속삭임, 그 아래 산허리 투명하게 휘감는 안개, 첫새벽의 신처럼 슴슴히 박명의 숨소리가 천 년 바위에 새로운 이끼를 새기고, 늦여름 극치의 위안으로 다가오는 초가을 앞에서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