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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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 지나간 사람시(詩)/김남조 2013. 11. 19. 19:05
말하지 않고 보낸 은밀한 진실 하나가 남아 있다 그의 죽음 그 외엔 용서 못할 어떤 잘못도 있을 수 없으리란 그 말 한마디를 나는 가슴 깊이에 묻었다 그 시절 나는 낡은 풍금의 모든 음계를 시도 때도 없이 울려 어지러이 소리내는 위태롭고 다급한 처지였고 사실은 그에게 마음 끌려 평형 가늠할 수 없었음을 옹색한 궁리로 그를 버려 그를 잊으려고 한 계절도 못다 채운 그를 떠나 보내었다 오늘 진종일 비가 내리고 어둠이 빗물 위에 엎드리니 그 사람을 등에 업은 듯하고 그 사람이 오히려 태산같은 어둠을 업은 듯도 하여 그가 두고 간 관용과 우수의 무게를 새삼 쓸쓸히 깨닫는다 (그림 : 정경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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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 아가와 엄마의 낮잠시(詩)/김남조 2013. 11. 19. 19:02
아가 손 쥐고 아가 함께 엄마도 단잠 자는 눈어린 대낮 아가 얼굴이사 물에 뜬 미끈한 달덩이지 눈이야 감건 말건 훤히 비치는 걸 조랑조랑 꽃이 많은 꽃묶음이나 잘 익은 과일들의 과일바구니 모양 연방 흘리는 단내나는 살 냄새 아가의 향기 꿈결에도 오가느니 아가 마음과 엄마 마음 금수레에 올라탄 메아리라 부르랴 사락사락 입맞추는 봄바람이라 부르랴 아가 한 번 눈떠 보면 엄마도 잠이 깨고 아가 방굿 웃어 주면 엄마 가슴은 해돋이 창호지 한 장 넘엔 누가 오고 누가 가건 우리 아가 옆 자리는 엄마의 낙원 (그림 : 김길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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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 겨울 바다시(詩)/김남조 2013. 11. 19. 18:57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虛無)의 불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그림 : 남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