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권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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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사람이 고래만 같으믄시(詩)/권선희 2014. 7. 2. 01:19
만나 본 사램들으는 다 안데이 금마가 을매나 자슥들로 물고 빨매 애끼는지 고랫배 타고 반 팽생 싸돌았다마는 살라꼬 온 데로 설쳤다마는 내는 안데이 반들반들하니 시커먼 눔 만나믄 말이재 가슴이 벌컹벌컹 뛰는 기라 금마가 을매나 이쁜지 모르재? 내하고 금마하고 똑같이 울렁울렁 지칠 때꺼정 파도타매 가는데 말이다 금마 옆구리에 몽실하니 새끼가 붙은 기라 우짜겠노, 내는 사램이고 지는 괴기니 놓치지 않을라꼬 가기는 간다마는 맴이 억쑤로 씨는 기라 그래그래, 가다보믄 새끼가 고마 쳐진다 아이가 그라믄 우짜는 줄 아나? 요래요래 지 한 쪽 팔에 새끼로 얹어가지고 간다 포 쏠라꼬 배는 달라 붙재 하마 숨으는 턱턱 올라 붙재 새기는 깩깩 울재 금마 가슴팍에 피멍인들 앤들겠나 말이다 어미 고래로 질질 끄잡고 온 날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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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추석시(詩)/권선희 2014. 7. 2. 00:32
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금마 맨키로 훤하이 쪼매 글네 야야, 지금은 어데 가가 산다 카드노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바다 볼 낯빤디기나 있겠노 말이다 가가 말이다 본디 인간으는 참말로 좋았다 막말로 소가지 빈 천사였다 아이가 그라믄 뭐 하것노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인자 돌아 올 길 일카삣다 아이가 우찌 사는 지럴 대구빠리 눕힐 바닥은 있는지럴 내사 마 달이 저래 둥그스름 떠오르믄 희안하재, 금마가 아슴아슴 하데이 우짜든동 처묵고는 사이 소식 읎는 기겠재? 글켔재? (그림 : 강요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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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아내의 서랍시(詩)/권선희 2014. 7. 2. 00:30
일요일 아침 아내는 목욕탕 가고 밖엔 비 내린다 손톱깎이 하나 처박힌 곳 모르는 내 집이 낯설다 서랍 안에 서랍 있다 내심 뒷돈이라도 꼬불처둔 것이기를 바라며 서랍을 연다 십 년이 된 크리스마스카드 첫차 구입 영수증 군복무 확인서와 해약한 적금통장 마른 오징어처럼 쩌억 눌러 붙어있다 제 꿈을 옳게 꼬불치지 못하고 아내는 내가 훌훌 벗어던진 것들만 주워 담고 살았구나 드응신 손톱깍기도 전에 살점을 뜯겼다 아내 슬리퍼가 빗소리를 끌고 온다 떨어진 마음 한 점 얼른 서랍 속에 넣고 돌아앉는다 (그림 : 김종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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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친절한 독촉시(詩)/권선희 2014. 7. 2. 00:20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에 오늘은 아파뜨 관리비 마감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막바로 농협에 가가 내야 하지마는 바쁘신 양반들은 뭐시 오늘 오전 중으로 여그 관리실에다가 갖다 주므는 지가 대신 내 줄라카이 일로다 갖다주시믄 고맙겠니더. 그라고 멫달이고 밀리가 돈이 늘어난 분들으는 다맨 을매라도 우선 갚아주시믄 좋겠니더. 통째로 낼라꼬 미라두믄 마 자꾸 늘아가 낸중에는 감당도 몬하고 그기 마캐 다 빚이 되는 기라요. 그라이까네 다맨 을매라도 쪼매씩이라도 갖다 내이소. 그라믄 내가 퍼뜩 농협에 가가 대신 내 줄끼요. 에, 에, 한성 아파뜨 주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알리니데이. 내가 오후에는 바빠가 여 읎으이 오전 중으로 꼭 쫌 갖다 주시믄 고맙겠니더. 마캐 알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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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다무포 이야기시(詩)/권선희 2014. 2. 22. 10:31
다무포 여자들은 물질을 할 줄 몰랐다네. 어느 날 머언 탐라에서 굵고 건장한 처녀들 건너와 팅팅한 궁디 들어 올리며 푸른 바다 주물러 넘치게 건져 올렸다네. 긴 장마에 갇힌 해녀 하나 힘껏 자빠뜨리고 들이민 팔복이 씨앗 하나가 세상을 바꿀 줄이야. 팔복이 각시가 물질만이 살 길이라고 야무지게 가르쳤다네. 다무포 여자들 앞 다투어 휘익 휙 뛰어들고, 그때부터 바다는 화들짝 깨었다네. 노란 장판 잘잘 끓는 경로당 청단 홍단 맞아 떨어지는 군용담요에 둘러앉은 늙은 인어(人魚)들, 앞바다 미역돌은 얼씨구나 길게 길게 겨울잠 잔다네 (그림 : 홍경표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