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권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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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과메기시(詩)/권선희 2015. 12. 4. 00:21
푸른 바다 물빛 털며 돌아 가는 생이다 지느러미 흔들고 흔들리며 삶을 부린 저 바다 노대바람 뚫고 명주바람 건너 온 아비처럼 어미처럼 돌아가는 길이다 서글픈 속내일랑 뒷산에 묻고 그리운 사랑일랑 가슴에 묻고 시누대에 눈을 꿴 몸뚱이들 덕장마다 환원(還元)의 문장을 쓰고 있다 화르르 비늘 돋는 구룡포 다시 바다로 향하는 차디찬 겨울 빛나는 율동(律動) 샛바람이 읽고 있다 노대바람 : 내륙에서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강한바람으로, 24.5~28.4 m/s(48~55 kn)의 속력으로 분다. 나무가 뽑히고, 상당한 건물의 피해가 발생한다. 명주바람 (명지바람) :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그림 : 구명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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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시월에는 정선 가자시(詩)/권선희 2015. 12. 4. 00:03
시월에는 노래 붉은 산천으로 가자 동해 깊숙한 해풍 자락 파도에 말아 들고 굽이굽이 아라리 곡절 앞서는 정선으로 가자 눈매 깊은 아비 순정한 품에서 머루 다래 넝쿨 감는 거기, 도원으로 가자 혼곤한 사랑에 언 몸 풀던 봄강에도 단풍 나리고 나물취꽃 하이얀 잇바디가 하늘 받들면 탯줄 창창하게 묻고 산 사람들 산국처럼 둘러 앉은 어무이의 국토, 난전으로 가자 이문 없는 생이 어디 있어랴 천리 물길 같은 생은 속절없어도 아리고 쓰린 고개 넘고 넘으며 막아도 막혀도 아우라지강은 바다에 닿고 꺾어도 꺾여도 곤드레는 핀다 시월에는 세상 싸늘한 모퉁이를 돌아 돌아서 갈피마다 붉게 타는 한 소절 갈피마다 붉게 피는 한 시절 아라리 곡절 무량무량 일어서는 정선으로 가자 (그림 : 조규석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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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비화항을 지나며시(詩)/권선희 2015. 11. 13. 20:19
함석지붕 갸우뚱 내려다보는 마당을 쿵짝쿵짝 절뚝이며 오가는 사내 오랫동안 쓰지못한 녹슨 미늘이지만 빤딱하게 날 세우고 어망도 촘촘 기워 놓았다 금이야 옥이야 품었던 고운 여식 하나 대처로 떠나 제어미처럼 소깃 한 장 없지만 저분덕거리는 배춧국에 식은 밥 말아먹고 놋수저 한 벌 헹구어 놓고 어긋난 길을 찾아 나서는 한 척 바다가 슬슬 모야를 푼다. 비화항 : 강원 삼척시 원덕읍 노곡리 에 위치한 어장 모야(暮夜) : 이슥하여 어두운 밤 (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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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삼천포에서시(詩)/권선희 2015. 11. 13. 19:56
누군가 떠나도 바다는 바다 돌아와도 바다는 여전히 바다라며 덥석 술부터 권하는 삼천포 오목하게 내미는 오목한 건 말이지 떠나 텅 빈 자리였다가도 오목한 건 말이지 이렇게 다시 빙 둘러 앉는 것이라며 곰보 자국 깊은 가슴에 자꾸 파도를 붓는다 그러니까 말이지 오목하다는 건 하면서 살짝 출렁이는 동안 어깨 너머에선 우두자국 처럼 섬들이 돋고 술잔은 만조(滿潮)로 깊어 가는데 초가을 하늘 한 점 안주로 쫙쫙 찢으며 시원하게 돌아나가는 삼천포에서 도톨도톨 붉어지는 몸 오목해지고 있었다 단물 홍건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그림 : 정의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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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희 - 목포 덩실이시(詩)/권선희 2015. 11. 13. 19:39
주점 문 밀고 들어서니 흰털에 노랑무늬 두렁두렁 박힌 개 한마리 문턱에 누워 비키질 않습디다 피해가려다 문득 괘씸하여 궁디 툭툭 차며 버릇없다 나무랐지요 꿈쩍도 않습디다 아니 들썩도 못합디다 홍어 고린내 초장에 찍던 주모 우리 덩실이 올해 스무 살 이랑께 내겐 서방으로 새끼로 왔당께 살아도 너무 살아 죽은 만 못하네만 지 죽을 때를 못 붙잡아서 저 모양 잉 께 타박 말랑께 말랑께 그 소리에 꼬리 끝 달싹달싹 합디다 한 때는 덩실덩실 앞발 들고 짓이 나서 핧다대며 새끼처럼 구불었겠지요 엄한 놈 수작 떨면 물어뜯을 기세로 당당하게 서방 노릇도 하였겠지요 죽을라 하면 살려 내는 여자와 여자 덕분에 죽을 수 없는 남자 털썩 누운 생 한점이 저릿저릿 합디다 . (그림 : 임재훈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