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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소리가 새벽부터 고막을 친다
귓바퀴를 굴려보니 뒤꼍 쪽이다
어머니가 코딱지만한 밭에
밥그릇을 엎어 박고 있다 해장부텀 뭣 허요?
뭣 허긴 뭣 허냐 꼬치 심을라고 비닐이 뚫제
고추 모종하려고 깔아놓은 멀칭비닐 위에
쇠밥그릇 뒤집어 올려놓고는 손벽돌로 내리치신다
칭칭칭, 비닐 뚫고 들어가 박힌 쇠밥그릇 빼내니
고추모 심을 구멍이 기막히다
똑같은 간격으로 뚫린 둥근 구멍들,
영락없는 밥그릇이다
풀밭에서 텃밭으로 변한 이랑들이
아흔두 개의 밥그릇을 내밀고 있다
밥그릇 나눠준 쇠밥그릇이
고랑에 누워 반짝 웃는다
따뜻한 밥을 담던 일 그만두고
비닐을 뚫는 쇠붙이로 변신한 그릇,
내년 오월이 오기 전에는
어머니께 물려받은 헌 칫솔을 문 채
수돗가에 얌전히 앉아 있을 것이다
검은 양귀비표 염색약을 출렁거리는 날은
한껏 젊어진 어머니를 말똥말똥 올려다볼 것이다
(그림 : 신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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