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박성우 - 오이를 씹다가
    시(詩)/박성우 2016. 8. 10. 17:05

     

     

    퇴근길에 오이를 샀네
    댕강댕강 끊어 씹으며 골목을 오르네

     

    선자, 고년이 우리 집에 첨으로 놀러 온 건
    초등학교 오학년 가을이었네
    밭 가상에 열린 조선오이나 따줄까 해서
    까치재 고추밭으로 갔었네
    애들이 놀려도 고년은 잘도 따라왔었네
    밭을 내려와 도랑에서 가제를 잡는디
    고년이 오이를 씹으며 말했었네
    나 는 니 가 좋 은 디
    실한 고추만치로 붉어진 채 서둘러 재를 내려왔었네
    하루에 버스 두 대 들어오는 골짜기에서
    고년은 풍금을 잘 쳤었네
    십오리 길 교회에서 받은 공책도 내게 줬었네
    한 번은 까치재 밤나무 아래서 밤을 까는디
    수열이가 오줌싸러 간 사이에
    고년이 내 볼테기에다 거시기를 해버렸네

     

    질겅질겅 추억도 씹으며 집으로 가네
    아무리 염병 떨어도
    경찰한테 시집 간 고년을 넘볼 순 없는 것인디
    고년은 뱉어도 뱉어도 뱉어지지 않네
    먼놈의 오이꼭다리가 요렇코롬 쓰다냐

    (그림 : 한영수 화백)

     

    '시(詩) > 박성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성우 - 밥그릇  (0) 2017.07.29
    박성우 - 돌을 헐어 돌을  (0) 2017.03.03
    박성우 - 별말 없이  (0) 2016.05.30
    박성우 - 봄소풍  (0) 2016.04.21
    박성우 - 소금벌레  (0) 2015.09.1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