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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 별말 없이시(詩)/박성우 2016. 5. 30. 19:54
윗집 할매네
밭가에 우거진 가시덤불을 일없이 쳐드렸다
그러고 나서 두어 날 집을 비웠는데
텃밭 상추며 배추 잎이 누렇게 타들어간다
일절 비료도 안하고
묵힌 거름으로만 키워 먹는 풋것인지라
내 맘도 여간 타들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요소를 쪼깐 허쳤는디 너무 허쳤는가?
아깐디, 뭔 비료를 다 주셨으라
윗집 할매는 고맙다는 표시로 별말 없이,
내 텃밭에 요소비료를 넘치게 뿌려주셨던 것이어서
나도 별말 없이
콩기름 한 통 사다가 저녁 마루에 두고 왔다
내 호박넝쿨이며 오이넝쿨이
윗집 할매네 부추밭으로만 기어들어가
여름 가을 내내 속도 없이 퍼질러댔지만
윗집 할매는 별말 없이,
비울 때가 더 많은 내 집을 일없이 봐주신다
(그림 : 채기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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