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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 돌을 헐어 돌을시(詩)/박성우 2017. 3. 3. 14:57
십여 년 동안 쌓은 돌탑을 헐어낸다
마당 귀퉁이에 달팽이처럼 둥글게
감아두었던 돌을 빙 돌아가며 풀어내
계곡 쪽, 집 가장자리로 길게 당겨간다
허물어낸 돌을 길게 늘어트려
축대 겸 돌담으로 다시 차곡차곡 높인다
골짝 물소리는 쉬이 돌돌 넘어오고
골짝 물은 어지간하면 못 넘어오게
큰 돌은 양 바깥으로 괴어 올리고
자잘한 돌은 안쪽에 촘촘 채워 넣는다
혹여 큰 비 칠 때 내려올지 모를 큰 물이
부득불, 우리 집에 들렀다 가야겠다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려 하면
그러지 말고 자네 갈 길 가시게나,
등 토닥여 돌려보낼 만큼 돌을 얹는다
어쩐지 허전하고 서운키는 하더라도
정 없이 아주 매정해 보이지는 않게
돌탑 허물어, 큰 돌은 불끈 안아 나르고
자잘한 돌은 대야에 담아 옮겨 쟁인다
이 돌들은 대체로 돌밭을 일굴 적에
하나둘 캐낸 것들인데 여기에는
땀이 아닌 오기로 나를 갈아엎을 때
작심하고 빼낸 돌덩이 몇도 섞여 있다
무거운 생각들은 계곡 아래로 굴리고
가뿐한 생각들은 계곡 위로 올리면서
흥얼흥얼 끙끙 돌을 헐어 돌을 쌓는다
(그림 : 이팔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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