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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이던가요
푸른 길을 걸어서 들어갔지요
어디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잔 할 만한
얼굴 익은 주모 하나 없는
법주사 푸른 그늘을 걸어 들어갔지요
앞서가는 누군가
팔상전 그 많은 기와 중에는
유독 푸른빛을 띠는 기와가 있다는데
그 기와를 찾으면 극락을 간다고 하는데
혼잣말처럼 그 말을 흘리고 가는 사람은 정작 딴전이고요
뒤에 가던 우매한 중생 하나
그 말을 날름 주워들고서는
극락에 미련이 있는지 어쩌는지
팔상전 기와를 샅샅이 둘러보는데요
헛, 그, 참,
어디에도 푸른 기와는 없고 해서
맥없이 하늘만 멀뚱거리며 쳐다보다가
문득 팔상전 꼭대기 위로 펼쳐진 궁륭의 하늘
그 푸른 하늘 한 장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아, 글쎄, 무릎을 치며 환호작약하더라니까요
허긴, 극락이 거기 있다는 소문은
벌써부터 파다한 세상이지만 말이지요(그림 : 설종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