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천양희
-
천양희 - 숫자를 세다시(詩)/천양희 2016. 9. 21. 22:40
숫자를 세는 것은 내 오래된 버릇 노선을 세고 계단을 세고 술잔을 센다 숫자를 세는 것은 숫자놀음이 아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술잔을 내려놓듯 계단을 내려가듯 지독한 마음의 진동을 눌러 버린다 내가 대학생이던 60년대 아버지는 내게 60년대식으로 말씀하셨다 화낼 일 있을 땐 하나에서 열까지 세고 더 화낼 일 있을 땐 백까지 세어 봐라 그러면 불 같은 화도 절로 내릴 것이니 참는 것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그때 불과 얼음을 생각했다 그때부터 생긴 숫자를 세는 버릇 세상 참는 방법이 되었다 오늘도 숫자를 세면서 생각한다 아버지의 방법에 비하면 내 버릇은 얼마나 사소한가 (그림 : 진미란 화백)
-
천양희 - 오늘 쓰는 편지시(詩)/천양희 2015. 12. 19. 10:08
- 나의 멘토에게 순간을 기억하지 않고 하루를 기억하겠습니다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습니다 영혼의 주름살을 늘리지 않겠습니다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가장 슬픈 날 웃을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겠습니다 혼자 사는 자유는 비장한 자유라고 떠들지 않겠습니다 살기 힘들다고 혼자 아우성치지 않겠습니다 무인도에 가서 살겠다고 거들먹거리지 않겠습니다 술 마시고 우는 버릇 고치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울지는 않겠습니다 낡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젊은 것들 당장 따끔하게 침놓겠습니다 그러면서 나이 먹는 것 속상해 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습니다 결벽과 완벽을 꾀하지 않겠습니다 병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생의 전부인 듯 살겠습니다 더 실패하겠습니다 (그림 : 최정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