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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의 시세계
천양희(1942 ~ )는 한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 부산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부산 일대에서 보낸 그이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아버지는 한시를 외우며 풍류를 즐기는 분이고, 총명한 어린 딸을 사랑한 분이다. 그이는 서울의 이화여자대학 국문과에 들어가면서 고향을 떠나는데, 그 떠남은 곧 失樂園(실낙원)의 고통을 안겨준다. 이화여대를 다닐 때 『현대문학』에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시인이 되었다. 시인과 사랑에 빠져 살림을 꾸렸으나 가야 할 길이 달랐다. 멸망한 왕조의 공주 같이 생계를 꾸리며 갖가지 험한 일을 해야만 했다. 그 고된 세월을 佛經(불경)을 외고 마음을 다스리며 건너온다. 시인이 된 지 마흔 해가 넘지만 그 마흔 해를 오롯하게 시만 쓰며 살지 못했다. 십년 넘게 시를 손과 마음에서 놓고 딴 짓하며 살았다. 홀로 먹는 밥은 차고, 밥이 찬만큼 삶은 늘 시리고 버거웠으며, 상처는 자주 덧났다. 이도저도 다 싫어 그저 죽으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 그이는 굳은 마음으로 직소포를 찾았다.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떨어지는 물을 보면서 죽을 힘이 있다면 그 힘으로 살아야만 뜻이 선다는 걸 번쩍 깨우치고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상처가 아물자 그 자리에 옹이가 생겼다. 다시 시에 매달렸다. 그이가 밥먹고 잠자는 방은 면벽수도하는 청정도량이 되었다. 마흔 해나 되는 獨居(독거)의 삶은 오로지 책읽고 시를 쓰는 修行(수행)으로 끌어올렸다. 그이의 시구는 무르지 않고 매듭진 자리처럼 단단하다. 살아온 세월이 맵고 짜기 때문이다.
천양희 시인의 시는 깨지고 찢긴 존재가 마침내 “둥근 물방울같이 환한 水宮(수궁)”(「시냇가에서」, 『마음의 수수밭』)을 찾아가는 여로를 보여준다. 시인은 모독당한 삶, 불화하는 삶, 암매장된 삶과의 苦鬪(고투) 속에서 오랫동안 암중모색한다. 그 고투의 생생함을 보여주는 게 「벌새가 사는 법」이란 시다.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 제 몸을 쳐서 /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벌새가 사는 법」, 『너무 많은 입』) 시적 자아는 제 몸 안에 가득 들어찬 미로 속에서 길을 찾고 길을 꽃처럼 피워내고자 한다. 1초에 90번이나 날개짓을 하며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는 벌새나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내는 파도의 그것을 닮고자 한다. 그 고투가 없다면 생명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다.
깨지고 찢겨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시적 자아는 마침내 풀을 붙잡고 일어선다. 도약과 비상은 생명의 숭고한 소명이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아를 잃고 침울함과 낙담으로 엎드려 있는 존재다. 그 새가 새장을 박차고 나와 멀리 날 때 생명의 주체로서 늠름해지는 것이다. “일어나 멀리 날 때 너는 너인 것이다 / 기어코 너 자신이 되는 것 / 그것이 너인 것이다”(「새에 대한 생각」, 『마음의 수수밭』). 새가 나는 것은 제 몸을 부단하게 쳐야 하는 일이다. 새가 날개로 제 몸을 쳐서 난다면 풀은 향일성의 힘으로 일어선다. 도약하는 것의 숭고함을 노래한 시가 「풀 베는 날」(『오래된 골목』)이다. 이 시에 따르면 시인은 “베이는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 엎드려 있다. 풀의 엎드림과 시의 화자의 엎드림은 하나다. 소멸과 생성, 즉 썩어 없어짐과 다시 돋아남의 사이에 엎드려 있다. 풀이 아나가는 길은 無動(무동)·無音(무음)의 길이다. 시의 화자는 풀을 베고 있다. 그러다가 돌연 풀을 향해 외친다. “풀아 날 잡아라 / 내가 널 당겨 일어서겠다”라고. 이때 풀은 밖에 있으면서 동시에 시적 자아의 내면과 會通(회통)한다. 더 나아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시의 화자를 일으켜 세우는 객체이자 주체인 것, 상처받고 절망으로 신음하는 존재에게 신생의 힘을 수혈하는 존재다.
이 도약하고 비상하는 존재가 닿고자 하는 곳은 “산 속의 산”이다. 세속의 아귀다툼이 없는 곳, 俗塵(속진)의 더러움이 정화된 장소다. 이 깊은 곳에 가 닿기 위하여 시인은 제 몸을 쳐서 길을 만드는 것인데, 홀연 세상에 없는 길은 만들 수가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 만들 수가 없다. 옆구리를 끼고 / 절벽을 오르니, 千佛山(천불산)이 /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마음의 수수밭」, 『마음의 수수밭』) 길을 만드는 것은 산 속의 산에 가 닿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생략하고 산을 단도직입으로 제 몸속에 들이는 일이다. 그리하여 새장의 새에게 그 구속의 쇠사슬을 끓고 바깥으로 멀리 날아가라고 외치고, “풀아 날 잡아라”고 외치며 일어선 시적 자아는 이제 둥근 물방울의 세계는 “투명한 물 속 / 저 환한 화엄계 !”(「청사포에서」, 『마음의 수수밭』)에 든다. 이 물의 세계는 환하다. 이 환하고 둥근 물은 정화된 물, 원초의 생명력으로 충만한 물이고, 시인이 늘 꿈꾸던 뭉클한 삶, 無憂殿(무우전)의 삶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직소포에 들다」(『마음의 수수밭』)는 시인이 부르는 최고 절창이다. 그이는 죽기 위해 직소포를 갔는데, 거기서 “피안이 이렇게 좋다”는 걸 깨닫고 다시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죽음 저쪽에서 삶의 이쪽을 바라보면 此岸(차안)은 彼岸(피안)이 되고 피안은 차안으로 자리를 바꾼다. 그러니까 이 시는 죽음 저쪽에서 삶의 안쪽을 바라보고 삶이 아름다운 기적이란 걸 홀연히 깨닫는 명오의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봐라, 시의 첫 행부터 동사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동사는 살아 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포획하는 그물이다. 죽음은 영원한 멈춤이다. 죽어서 움직임이 멈춘 주검에게 동사는 더 이상 쓸모없다. 그러니까 죽음은 동사가 필요없는 상황으로 직진하는 것이다. 동사는 살아 있는 것의 곁에 붙어서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봉사한다. 동사는 삶의 징표들이다. 동사의 활용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활기, 사물의 운동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과연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산꿩은 공중으로 도약하고, 솔방울은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여 땅으로 떨어진다. 살아있는 것들은 부스럭거리고, 꿈틀대고, 흔들거리고, 일어서고, 달리고, 춤춘다. 살아있는 것들의 세상은 움직임으로 충만하지만, 반대로 죽은 것들은 움직임이 없다. 폭포소리가 잠이 든 듯 고요한 산을 흔들어 깨운다. 산꿩은 그 소리에 놀라 뛰고, 나뭇가지의 솔방울은 떨어진다. 도토리를 주우러 나왔던 다람쥐가 꼬리를 쳐들고 생기로 충만한 주위를 유심히 살피는데, 오솔길이 저 혼자 환해진다. 절망 때문에 경직되어가던 마음이 움직이는 것들이 만들어낸 생기로 충만한 세상과의 만남으로 돌연 경직에서 풀려나는 기미를 힘차게 드러낸다. 직소포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큰 동선을 그리며 떨어지는데, 그 거침없는 하강의 움직임과 소리의 웅장함으로 이룬 거대한 활기를 죽음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나'의 마음속으로 수혈한다. 기진하여 빈사지경에 이른 '나'의 마음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빚는 저 웅장한 생을 찬가와 조응하며 기쁨으로 가득 찬다.
관음산은 그 자체로 평지돌출, 즉 수직으로 일어서는 기운의 총체다. 산의 솟구침은 형태론적으로 勃起(발기)이며, 감싸고 안으로 받아들이는 음의 기운에 비해 밖으로 발산하며 뻗치는 양의 기운의 득세를 나타낸다. 관음산은 양의 기운이 집약되어 그 이마가 하늘에 닿은 산이다. 하늘 위로는 무한천공이다. 산은 거기 있는 세상 속에서 결코 거기 있지 않은 세계다. 우리 선조들은 산을 가리켜 선계라고 했다. 시인이 산을 오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거기에 있으면서도 거기가 아닌 세계를 찾아 떠난 곳이 산이다. 높이 솟아 너른 품 안을 가진 관음산은 온갖 활동운화하는 것들을 품는다. 그 중에 하나가 직소포다. ‘나’는 그 산의 품으로 날아든 “무소유[의] 무소새”다. 힘찬 소리를 내며 직소의 물들은 수직으로 하강하고, 하강 운동 중에 물들은 물방울이 되어 제멋대로 튀어오른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본다. 저 힘찬 생의 몸짓들이야말로 그토록 오래 꿈꾸어왔던 "백색 정토 !"이며, "환한 수궁"이 아닌가. 어느덧 “무소새”는 폭포에서 떨어져 공중에 떠 있는 무수한 飛沫(비말) 중의 하나, 한 방울의 “환한 수궁”으로 거듭 태어난다.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부터 하나를 얻어서 된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안정되며,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험하고, 계곡은 하나를 얻어서 채워지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산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노자, 『도덕경』 제39장) 그 하나가 무엇인가 ? 그게 도다. 시인은 죽기 위해 삶의 벼랑까지 갔다가 홀연 그 하나를 얻었다. 시인의 내면에서 눈뜬 것은 明(명)이요, 觀(관)이다. 눈이 열리니, 생명우주의 광대무변한 운용 속에서 작용하는 도를 홀연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을 見者(견자)라 했던가 ! 폭포소리는 낮게 엎드린 계곡을 일으킨다. 그 기세로 산꿩이 놀라 튀고, 솔방울은 가지를 버리고 땅으로 내려앉는다. 직소포의 물소리는 삶의 온갖 질곡에 주검으로 엎드려 있던 ‘나’의 마음마저 일으키려고 내민 손이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일어선다. 죽은 마음이 살아서 일어서니, 天(천)·地(지)·神(신)·谷(곡)·物(물)이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하나가 되어 힘차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저 몸 무거워 매사가 굼뜬 바위거사마저 엉덩이를 들고 흔들 한다.
장석주 / 시인, 문학평론가
낮설게 하기의 아름다움
천양희 (시인)
저는 평소에 시는 언어로 짓는 사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시(詩)라는 말의 한자어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왜 절 사자를 거기에다 붙였을까요. 다 아시는 대로 절은 용맹정진하는 구도자들의 수행장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들도 구도자의 정신과 자세로 시를 쓰라는 뜻에서 '시(詩)'자가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언어로 사원을 짓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이화여대 3학년 때로, 박두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서 등단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등단 통로가 두 군데밖에 없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과 {현대문학}지 추천 통과밖에 없었는데, 현대문학이 유일한 문예지였습니다. 올해로 내가 시인의 길을 걸어온 지가 35년이 됩니다. 시의 나이가 35세가 되는 셈이지요. 그런데 그 동안 걸어온 삶의 길이나 시의 길이 너무 꾸불텅해서 내 자신을 바꾸는 데도 20여 년이 걸렸습니다.
이 나이쯤에는 앞서간 여러 사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도 석가도 이 나이쯤에 삶의 절정에 다다랐지요. 예수는 33세에 인류를 구원했고, 소월(素月)도 영랑(永郞)도 파울 첼란도 실비아 플라스도 요절했지만 불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컴퓨터를 하지 못해서 원고지로 글을 쓰는데, 원고지 앞에 앉으면 사각의 모서리가 절벽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내가 그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여러분이 제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 시가 밥 먹여주냐고 물으면, 나는 "시가 내 정신의 밥이다"라고 분명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쌀로 된 이밥은 우리 배를 부르게 하지만, 시는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편의 시를 가슴에 넣고 하루를 너끈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한 편의 좋은 시가 가슴 속을 따뜻하게 해서 평생을 거기에 기대면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한 끼의 밥은 굶을 수 있어도, 정신의 허기는 사람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시가 밥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시로써 배부른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시인이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돈도 밥도 안 된다고 주저하고 두려워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아예 다른 길로 가야지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피나는 노력 없이, 오랜 습작 기간 없이 시인이 되려 하고 좋은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니체는 일찍이 '좋은 글은 피의 여로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피로 쓴 글만이 진실하다고 얘기했고, 불멸의 명작을 남긴 플로베르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가리켜, '내 심장과 두뇌를 짜서 그걸 고갈시키는 과정이다'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만큼 작품 쓰기가 어렵다는 걸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 그는 '한 마디의 말을 찾기 위해서 나는 하루 종일 내 머리를 쥐어짰다'라고도 토로했습니다. 오늘날 활동 중인 시인들이나 시인 지망생들조차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 두 사람이 얘기한 것은 그만큼 시인 정신이 치열해야 한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반문해 봅니다. 너는 과연 피의 여로를 거쳤느냐? 너의 심장과 두뇌를 짜서 토로하는 과정을 거쳤느냐? 그렇게 반문하면 어떤 때는 말문이 콱 막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수많은 밤을 정말 피 흘리는 것처럼 지샌 적도 많고 수많은 파지를 버렸습니다. 수많은 파지를 버린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만나기 위해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몇 년 걸린 나의 시 중에 [직소포에 들다]가 있습니다. [직소포에 들다]는 13년 만에 완성된 시입니다.
[마음의 수수밭]은 8년 만에 얻어졌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얻어지는 시가 있는가 하면,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그믐달]이라는 시는 30분 만에 썼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포도가 익어서 향기가 나듯이 어머니가 늘 내 가슴속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겁니다. 그런 게 흔하지는 않고 단 한 편밖에 없습니다.
나는 낯선 곳에 여행을 갔다가 오면 금방 시를 쓰지를 못합니다. 그때그때 메모해 두었다가 다시 한번 그곳에 찾아가서 그때 내가 왔던 심정과 지금 내가 여기 서있을 때의 심정이 어떤가 내 자신을 닦달해 봅니다. 너는 이걸로 올라가서 시를 쓸 수 있겠는가. 그래서 거기서 느낌을 메모해 두었다가 와서 겨우 시를 완성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과작(寡作)인지 모르지만, 과작이라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다작(多作)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무슨 시를 몇 편이나 쓰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지하철 계단에서 번개 같은 시상을 매만지며
나는 메모지를 꼭 넣고 다닙니다. 그때그때 생각이 떠오르면 장소를 생각하지 않고 멈춰 서서 그 생각이 떠날까봐 메모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갈 때 사람들이 올라가는데 무슨 생각이 팍 떠오르는 겁니다. 생각이 떠날까봐 딱 멈춰 서 있는데, 뒤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가지를 못하고 짜증을 내는 겁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찰나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뒤에 사람들이 서 있고 내가 타야 하는데 문득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눈총을 받는 게 차라리 낫지 싶어서, 옛날같이 연기처럼 날려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에 버티고 서 있다가 겨우 한 줄을 건졌습니다. 그럴 때의 희열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누가 미친 여자라고 해도 좋습니다. 자기가 정말 붙잡아야 된다는 것을 메모해 두지 않으면 다 사라집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메모한 노트가 지금 수십 권에 이릅니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나는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도 메모 부자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참 웃기는 여자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참 행복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시에 대해서 이렇게 순장을 바치거든요. 그 순정을 시가 알아주었던지 시가 나를 받아줬어요.
옛날에는 내가 시를 받아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시가 나를 받아줘야지 한 편의 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 이 시가 나를 받아주고 있으니까 시와 함께 살면서 어떤 걸 겪더라도 나는 그걸 고통이던 괴로움이던 행복한 괴로움과 행복한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시를 내 생업으로 삼는 게 팔자라면, 시를 팔자로 삼아 세상을 남들이 아무리 빨리 가도 나는 터벅터벅 낙타처럼 걸어가려고 합니다.
등단 18년 만인 1983년에 첫 시집을 냈습니다. 굉장히 늦게 낸 셈입니다. 그 동안 우여곡절을 거치는 동안 시 한편 한편이 너무 구원이고 나의 구명줄이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감동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시 외에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를 구원으로 삼고 계속 시를 썼는데, 두 번째 시집 낼 때까지 내가 그렇게 맹목적으로 사랑을 바쳤지만 짝사랑으로 그치고 마는구나 하는 괴로움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딱 차지 않는 시들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상재한 시집이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입니다. 영국의 시인 셀리는 "신이 나에게 묻는다면 때때로 울었노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는데, 나도 그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 눈물만 나는 겁니다. 두 번째 시집은 {사람 그리운 도시}인데, 도시에 그렇게 사람이 많아도 사람이 그립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시집 {하루치 희망}을 낼 때는 언어의 모순을 통해서 세상의 모순을 드러내는 전략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을 보면 언어유희, 동의어, 반복어 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나는 세상에 대해서 발길질을 한번 한 거지요. 왜 말놀이를 많이 했느냐고 사람들이 할지 몰라도 내게는 타당성이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고 혼자서 갇혀 있을 때 무엇과 놀며 지냈습니까. 만화를 보겠습니까. 무슨 게임을 할 줄 알겠습니까. 나는 말로써 놀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놀이를 그 책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다섯 번째 {오래 된 골목}에도 조금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외로움이 말놀이로도 다 메워지지를 않으니까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말놀이를 하고 동의어, 반복어를 씀으로써 내 의식의 전환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시집 {마음의 수수밭}을 내기 전까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다녔습니다. 관광여행이 아니라 서울에서 살기가 너무 힘이 들면 살아서 돌아오려고 한 여행도 있었고, 여행을 가서 정말로 살아서 못 돌아오면 안 돌아와도 좋다는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때의 여행이 나한테는 고행이었고 내 삶의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닐 때의 경험이 {마음의 수수밭} 속에 많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수수밭}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어떤 일이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죽고 나면 이 시는 남아 있을 것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다섯 번째 시집까지 나왔는데 생각해 보면 시의 길에는 에누리도 덤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라는 것이 예수의 고난을 상기시키잖아요. 왜냐하면 부활의 환희도 십자가의 수난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 정도로 글쓰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이 글쓰기의 궁극은 불교에서 말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이고 그 결과는 등신불(等身佛)이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시에 대해서 어떤 오체투지(五體投肢)를 해야 합니다. 자기 몸을 완전히 바닥에 엎드려서 낮춰야 됩니다. 치열하더라도 겸허하게 치열해야 합니다.
자기 시가 조금 잘 써진다고 해서 턱을 쳐들고 못 쓰는 사람을 무시하면 발전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겸허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시를 써 나가야 됩니다. 말하자면 이렇게 힘든 시하고도 나는 한몸이 되어서 정말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말입니다. 그건 왜 그런가 하면 시와 같이 있으면 내가 진실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진실하고 배가 맞는다는 확실한 느낌이 옵니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시와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어느 시인은 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맨몸으로 철조망을 통과한 사람들의 등판과 같다.' 이성복 시인의 이 말을 들으니까 내게 전율이 오더군요. 이제 시를 쓰는 자체도 우리들 삶의 문제잖아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노력의 하나라면 희망이 너무 넘쳐도 시가 안 되고 절망에 너무 질식해도 시가 되지 않습니다. 부정과 긍정이 이중적으로 교차하는 그 자리에 꽃이 핍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자기 폐쇄성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날 내가 한강을 지나가는데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을 보는 순간 '아, 시를 저기에 비교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도 가오리연과 방패연이었습니다. 가오리연은 가볍기 때문에 공중으로 올라가는 시간은 굉장히 빠릅니다.
하지만 굉장히 까붑니다. 요리조리 공중을 까불다가 결국은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꽂히고 맙니다. 반면 방패연은 아주 의젓합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굉장히 힘이 듭니다. 상승 속도가 무척 느리지만 한번 공중으로 올라갔다고 하면 자기 스스로 균형을 잡습니다. 그래서 꽂히는 일 없이 아주 의젓하게 하늘을 가릅니다. 가오리연과 방패연은 외형부터 다르고 몸집은 비교도 안 됩니다.
나는 가오리연을 조금 나쁜 시에, 방패연을 좋은 시에 비교해 봤습니다. 그리고 연도 날리기 전에 절대로 빨리 날려서는 안 됩니다. 잘 만들어서 띄울 때는 아주 높이 올라가고 오래 하늘을 납니다. 마음이 급해서 빨리 날리려고 하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연을 날릴 때는 얼레를 잡은 손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얼레를 잡고 당길 때 줄을 너무 많이 당기면 끊어지고, 느슨하게 당기면 풀어집니다. 그래서 손으로 당길 때는 당기고 놓아줄 때는 놓아줘야지, 균형을 잘 잡아서 높이 올라가고 하늘을 오래 날 수가 있는 겁니다. 연이 빨리 올라간다고 해서 반드시 높이 올라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래 견디는 것도 아닙니다.
- 내가 아닌 것은 연줄을 끊듯 버려라
어느 스승이 거문고를 앞에 두고 제자한테 물었습니다. 줄을 너무 당기니까 어떻느냐고 했더니 줄이 끊어집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너무 느슨하게 하면 어떻더냐고 했더니 음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문학 지망생들이나 등단한 신인들은 가오리연처럼 너무 빨리, 높이 올라가려고 하고 오래 견딜 줄을 모릅니다.
시대가 너무 급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시를 써서 등단하려 하고 빨리 시집을 내서 유명해졌으면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하지만 시라는 것은 잡초 전략도 아니고 흥부전략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이디어를 쫓아가서 되는 것도 아니고 유행을 따라간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니까 자기 삶에서 체득을 해야 됩니다.
누구도 시를 써주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의 경험도 중요하고 평소의 마음 씀씀이도 중요하다는 게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있지만 아무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시에 임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좀 느리고 좀 미흡하더라도 나는 나여야 합니다. 내가 남이 아니잖습니까. 나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런 나의 개성을 버리고 괜찮다 싶은 것을 닮으려고 하면 그건 벌써 이미 자기가 아닙니다. 자기가 아닌 사람이 시를 써놓으면 좋은 시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닌 것은 따라가지 말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연도 잘 날다가도 어느 순간 줄이 끊어져서 얼레를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미련 없이 떠나 보내야 합니다. 그걸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시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언어들도 어느 땐가는 나와 맞지를 않습니다. 그럴 때는 자꾸 거리에 매달리지 말고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버린다는 것은 자기 안으로 단단해진다는 겁니다. 단단해진다는 것은 어떤 외부의 조건이 닥쳐도 견뎌낼 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견뎌낼 힘이 있다면 방패연과 같은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은 아주 평범한 것 같아도 중요한 일입니다.
독자의 관심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고 시 자체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을 만나보고 싶지만 그 시인의 시가 별로 아니면 시인도 만나보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요즘의 시들은 너무 바깥에 민감합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나 세계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도 없이 아주 포즈에 능한 시들이 많습니다. 다변과 요술을 문학적 열정과 혼동하는 시들이 있습니다. 문맥이 잘 안 통하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시들이 있습니다. 이름만 덮으면 누구의 시인지도 모르게 비슷비슷한 시들이 있습니다. '
아, 이런 시들은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 그런 시들을 보면서 거울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어느 평자가 이런 말에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이렇게 감동은커녕 공감조차 할 수 없는 시들이 양산되면 너무 위험합니다. 시 독자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자꾸 수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시도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시 독자 수도 줄어들고 그 동안 시인한테 갖고 있던 기대나 관심조차도 줄어들게 되면 참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독자들을 걱정하기 전에 시인들 자신이 그 치열성을 놓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시를 쓰실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걸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즘 시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80년대를 시의 시대라 하고 90년대를 시의 소멸 시대라고 하잖아요. 나는 그런 표현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됩니다. 소멸이나 쇠퇴라는 말을 쓰기에는 90년대 시가 80년대 시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고 있고 고립시킨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종이책이 줄어들고 전자책이 나온다고 해도 종이책은 종이책 나름대로 소중함을 갖고 있을 테니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문명이 디지털화되면 될수록 시의 세계는 자꾸 서정성을 회복합니다.
시라는 게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따라간다고 해서 좋은 시가 아닙니다. 우리의 전통 없이 어떤 실험시가 있겠습니까. 전통이 바탕이 되는 그런 실험시가 제대로 실험시가 되지 전통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면, 농부들이 그렇게 잘 가꾸어 온 밭에 형편없는 씨를 뿌려서 완전히 농사를 망치는 그런 실험시들은 실험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 중에 신춘문예에 응모자 수가 날로 늘어가고 문예지의 응모자 수도 늘어갑니다. 각종 문예 창작 학교의 프로그램들이 굉장히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시집이 줄어든다고 해도 많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위기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뭐가 더 위기냐 하면 많이 양산되고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좋습니다만 시인을 양산하게 되면 치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치열성을 잃어버릴 경우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 공황이 생기게 됩니다. 그럴 경우에 오히려 위기가 아닐까, 청소년들의 왜곡된 시 교육이 대학생이 되어도 마찬가지고 어른이 되어도 시에 대해서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TV를 보고있는데 수능시험에 대비한 국어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시인의 시를 강의하고 있었는데 전문은 살짝 한번 보여준 다음, 시 한 구절 한 구절을 해체시키고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분석하더니 상징이 어떻고 비유가 어떻고 도치가 어떻고 난도질을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시 한 편은 어디로 가고 없고 아주 쓸모없는 수사만 남발되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런 왜곡된 시 교육을 하니 어떻게 우리 청소년들이 시를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고 시를 가까이 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우리 나라의 입시제도에 정말 분통이 터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걸 없앨까, 위기라고 하지만 경제위기만 위기겠습니까. 문화위기가 나는 더 큰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시를 들려준답니다. 학년이 높아갈수록 시를 자꾸 이해시켜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거의 100편을 외운다고 합니다. 그냥 외우는 게 아니고 자기의 가슴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같이 시를 획일화시키고 분석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미국의 엠허스터라는 대학이 있는데 문학창작이 유일한 필수 과목이라고 합니다. 그 교육 이념이 뭐냐고 하면 종합 사고력을 갖춘 지성인을 양성한다는 것입니다. 국가 경쟁력이 그 학교에서는 문학, 철학, 자연과학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학교랍니다. 그래서 1,600명밖에 안 되는 초미니 학교인데도 미국 전체 인문과학대학에서 1등 자리를 몇 년간 고수하고 있답니다.
이 창작강의를 패스하려고 과외공부까지 한답니다. 일본에도 자매학교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언제 이런 학교가 생기겠습니까. 맨 일류학교만 생각하다가 언제 제대로 된 훌륭한 시인 작가가 배출되겠습니까. 정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데 개인의 힘이 미약하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참 분통이 터집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고 있을 때 왕에게 영국하고 셰익스피어 중에 뭘 택하겠느냐고 누가 물었는데 인도는 버려도 셰익스피어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답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뭘 택하겠습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우리의 옛날 조상들은 시를 짓고 노래하는 걸 자기네 생활 속에서 아주 오랜 전통으로 여겨왔습니다. 왕에서부터 촌부까지 다 시를 사랑하고, 뿐만 아니라 시를 통해서 삶의 도리를 배우고 자기의 꿈을 드러냈습니다.
과거시험 제도에도 관리등용 시험을 보는데 시가 제일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잘 산다고 해서 과연 잘 사는 겁니까. 퇴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것들이 시를 죽이고 시인을 죽인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톰 슐만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소설을 보셨지요. 영화도 상영이 되었고 비디오도 나와 있으니까 안보신 분은 빌려보시고 아이들도 한번 보게 하세요. 공부만 하라고 해서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걸 보면 왜 인간한테 시가 소중한가를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굉장히 마음을 트이게 해줍니다. 대강의 줄거리를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명문학교인 웰튼 아카데미에 키팅이라는 국어선생이 새로 부임을 합니다. 첫날 첫 시간에 키팅 선생이 휘파람을 불면서 교실로 들어옵니다. 애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 선장이여, 우리 선장이여. 그러면서 이 시는 휘트먼의 시 한 구절인데 링컨 대통령을 찬양한 시인이 앞으로 자기를 그렇게 불러도 좋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 엄격한 교육에 찌들려 있는 학생들이 너무 충격을 받고 어리둥절해 있으니까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제군은 알겠나, 너희들은 지금 전쟁중이란 말이야 전쟁. 그리고 너희들의 혼은 위기에 빠져있다. 나 너희들로 하여금 언어를 사랑하며 자비를 베푸는 일을 가르치겠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에반스 프리차드 박사가 쓴 감상문 21쪽을 찢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놀라서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찢습니다. 그걸 왜 찢게 했겠습니까. 이 키팅 선생은 너무 보수적이고 엄숙자의자의 교육장인 웰튼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이 가식과 강제의 허울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허울 속에서 아이들을 빼내어서 창조적인 인간들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를 했던 겁니다. 이런 시도가 사실은 에반스 프리차드 박사의 감상문을 찢게 한 데 대한 의미심장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시 쓰는 데 이론이 필요합니까. 물론 기초는 되어야지요. 하지만 이론에 대입시킨다고 해서 시가 안되거든요. 오히려 손해볼 일이 더 많습니다. 이론에 밝으면 시를 못씁니다. 사람들이 시를 읽는 것은 우리가 인류의 한 일원이면서 정열에 넘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의학이나 법률, 은행업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주 필요한 분야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시나 로맨스, 사랑이나 아름다움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존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시는 우리 인간 삶의 양식이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렇게 화두를 던져놓고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끊임없이 시를 읽히고 쓰게 하고 토론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토론문화가 없습니다. 내가 대학 모교인 이대에 가서 창작강의를 두 학기를 했었는데 죽 앉아 있는 게 싫어서 둥글게 앉혀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뭘 주면서 토론을 해보라고 했더니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겁니다. 우리 나라는 토론문화가 이렇게 안 되어 있으니 서로 주고받는 대화도 잘 안되고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요즘 학생들한테는 두 가지 결핍이 있다고 합니다. 감동할 줄 모르는 것과 자연하고 친화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데이트 할 때도 컴컴한 곳이 아니면 백화점입니다. 북한산과 청계산도 좋은데 거기는 갈려고 생각을 안합니다. 연애하는 애들이 한번도 산에 오는 것 보지 못했습니다.
돈도 들지 않고 얼마나 볼 게 많습니까. 그래가지고 나중에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니까 감동없는 인간으로 크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이 키팅 선생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을 구태의연한 틀 속에 가둬놓고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강제교육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정말 창조적인 인간으로 만들려 했는데, 보수적인 교장과 일류병에 병든 학부모들로부터 쫓겨나고 맙니다. 그래서 키팅 선생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쫓겨나지만 학생들은 자기들의 의식을 전환시켜 주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키팅 선생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 고정 관념을 깨고 자유로운 사유의 날개를
만일 이 키팅 같은 선생이 우리 나라에 있다면 아마 지금쯤 쫓겨났고 왕따당하고 있을 겁니다. 이 왜곡된 시 교육이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21세기 문학 행보를 늦추게 할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좋은 시인, 훌륭한 시인이 어떻게 왜곡된 시 교육을 받고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이런 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법이 많은 사회는 범죄가 많다고 합니다. 반면 시를 권하는 사회는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술을 권하는 사회였고, 요즘은 인터넷을 권하는 사회, 골프를 권하는 사회지요. 언제 시를 권하는 사회가 올까요.
'삶의 질'이란 어떻게 해서 생긴 단어일까요. 이 단어를 제일 먼저 쓴 사람은 영국 작가 프리스틸인데, 그는 1943년에 어느 글에서 '모든 시민에게 한층 더한 안정과 보다 나은 가치와 보다 고귀한 삶'이라고 쓴 데서 따온 거라고 합니다. 삶의 질이라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삶의 질이라는 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아름다운 생활을 설계할 수 있고 사람을 참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그게 될 때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지 무조건 삶의 질이 높여집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물질이 풍부하면 삶의 질을 높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물질은 삶을 편리하게는 하지만 사람답고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게 하지는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질이 아무리 풍부해도 정신이 결핍되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947년에 사르트르가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뭐라고 했느냐 하면 미국은 물질은 풍부하지만 풍요로운 삶은 없다고 한마디로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미국이 달라졌지요. 그래서 밥을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르듯이 시를 가슴 속에 넣고 있으면 정신이 부릅니다. 시는 우리 정신의 밥입니다. 우리가 배가 부르다고 해서 살 수 있습니까. 밥이 아무리 배를 채워도 정신은 채워줄 수 없거든요. 그래서 밥이 행복의 기본 조건은 되어도 충분 조건은 못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질로 배가 부른 시대일수록 정신은 점점 더 고파갑니다.
예수와 석가를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이 분들은 우리 인류가 출현한 이래 최고 최상의 정신을 보여준 분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분들이 말씀하신 거는 전부가 시입니다. 경전이나 성경을 보면 그토록 오래 되어도 뭐든지 사랑하고 읽고 또 읽어도 감동을 줍니다.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경전도 성경도 소중하게, 크리스천이나 불교 신자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일반 무신론자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그까짓 것 골치 아프게 읽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시는 우리의 삶의 중심과 정신의 정수를 한데 묶어놓는 그 어떤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함께 보여주는 황홀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 황홀한 세계를 여는 문이 바로 시입니다. 여러분들이 시를 많이 읽고 많이 사랑하면 그 황홀한 세계를 자기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희열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옛말에 '시를 알아야 사람다운 말을 할 수 있고 또 모든 이는 자기가 읽은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사십이 넘으면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은 관상이 다릅니다. 사람이 영혼의 기쁨이 고갈되면 피폐해진다고 합니다. 그 굶주림을 채우는 길은 시가 가장 좋은 치유 방법이고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시를 만나면 감동하게 되고 그게 바로 기쁨입니다. 그럴 때 마음이 환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머리를 하고 마음에 들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듯이 하물며 좋은 시를 읽을 때의 감동이 금방 사라지겠습니까. 인류의 역사가 지속하는 한 우리의 시는 결코 멸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무리 위기라고 하고 다른 좋은 놀이기구들이 나와도 그건 금방 사라집니다. 그래서 시인이 시를 통해서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거나 시를 정신의 밥으로 만들지 못할 때에는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언어로 밥을 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집이 많아도 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집이 많아도 시가 없고, 진정한 독자가 없다면 우리가 정신 공황에 빠져서 정신의 거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신의 거지라는 단어가 얼마나 슬픈 단어입니까. 그래서 시인을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입니다. 그리고 시를 판단하는 것은 진정한 독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독자가 되면 우리는 꼼짝못합니다.
어떻게 함부로 시를 써서 여러분한테 보여주겠습니까. 정신이 팍 차려지지요. 시인은 시를 끝낸 순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시를 쓰는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시 읽기를 끝낸 순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시를 읽고 있는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겁니다. 독자가 없는 시는 있을 수도 없고 독자들도 시를 모르면 독자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독자의 위치라는 것은 상당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중에 시 창작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염원을 가진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시 창작의 방법을 얘기해 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이게 시 창작의 기본 방법입니다. 이것 없이는 절대로 좋은 시를 쓰지 못합니다. 왜 많이 생각하라고 하느냐면 상상력이 아주 폭이 넓어집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던가 세상을 읽는다던가 사람을 읽는다고 하면 생각의 폭이 굉장히 깊어집니다. 많이 쓰라는 것은 저절로 문장수업이 됩니다.
만일 오랜 습작 기간도 없고 피나는 노력 없이 그냥 좋은 시를 쓸려고 과욕을 부리면 그나마 갖고 있던 사고도 흐려지고 재능도 박탈당합니다. 우선 창작하는 즐거움을 가지시고 그 다음에 욕심을 부려야지 창작하는 즐거움은 저쪽으로 보내놓고 과욕만 부리면 절대로 좋은 시가 나오지 않습니다. 시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금방 붓을 떼고 말면 시는 가차없이 시 쓰는 사람을 처단합니다. 말하자면 어떤 즐거움을 우선하지 않고 결과를 탐하면 언어 나열이 되고 남을 모방하기 쉽습니다. 그건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낡은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어야 됩니다. 그리고 앵무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이 지저귀고 남이 한 말을 따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로 안됩니다. 내가 좀 서투른 목소리라도 내 지저귐이 있어야 됩니다. 마음 속에 가위 하나를 넣어놨다가 내가 너무 잡다한 말을 많이 쓸 때에는 그 가위를 꺼내서 잘라 버리세요.
헤밍웨이가 지방신문의 기자로 있을 때 젊은 시절 문학에 대한 열망도 많고 해서 기사를 쓸 때마다 어렵게 쓰고 길게 써가지고 가면 부장한테 굉장히 야단을 맞았다고 합니다. 글은 간결하고 쉽게 써라. 그때의 문장 훈련이 자기가 명작을 쓰는데 굉장한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부장이 야속하고 미웠지만 정말 감사하다고 그는 회고록에 쓰고 있습니다.
어휘가 쉬워야 되고 외워서 읽기가 쉬워야 되고, 문장이 쉬워야 됩니다. 너무 어렵고 잡다하게 쓸려고 하면 오히려 맥을 못 찾습니다. 자기 글을 자기가 못 찾아서 폐쇄성에 빠져버리면 시를 쓸 수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역발상을 해야 됩니다. 미와 추, 추와 미 해도 되지 않습니까. 하늘과 땅, 남자 여자, 나와 너, 체험이나 지식까지도 확 뒤집어야 합니다. 한번 깨보고 뒤집어 보는 겁니다.
내가 똑바로만 걸어가는 게 아니라 물구나무서서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 똑바로만 걸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시범을 보여줄 때 물구나무서서 걸어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고 독창적인 시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독특한 경험세계를 가진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도 독특한 시를 쓰게 되는데 기여를 하게 되는데,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구체화시켜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지 그게 없으면 주관적인 자기 폐쇄성에 빠져버립니다. 남들은 아무런 감흥도 없는데 저 혼자만 북 치고 장구 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시어를 잘 다뤄야 됩니다. 논개의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물결 위에' 하는 시구를 읽고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강낭콩이 놀랍게도 흰색이거나 약간 자줏빛, 아니면 연분홍색이었습니다. 그런데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이라고 했으니까 그건 시어로서는 맞지 않습니다.
- 어린애가 첫 세상을 보듯 시 앞에 앉을 때
어떤 신인이 나한테 시를 보여주는데 소쩍새가 겨울에 울고 있더라구요. 소쩍새는 초여름부터 웁니다. 그래서 내가 없는 것을 상상력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좋지만 실제로 있는 것을 왜곡시키는 것은 안 됩니다. 여름에 우는 소쩍새를 겨울에 운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마음속에 생물을 넣고 다녀야 합니다. 살아있는 식물, 새소리 등 생물을 넣고 다녀야지 역동적인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계절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비가 와도 그만, 달이 떠도 그만, 눈이 와도 그만 종소리를 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으면 생각이 죽어버립니다. 죽은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있는 시를 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연애를 하지 않아도 연애 감정을 좀 가져 보세요. 그리고 자기를 살려보세요. 그러면 시를 쓰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낯설게 하기를 해야 합니다. 낯설게 하기라는 단어는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이라고 일컫는 문학 이론가들이 있었는데 '시의 기능은 사물의 낯설게 하기'라고 쓴 데서부터 기인했다고 합니다. 낯설게 하기의 본보기의 시로는 김광균의 [추일서정]의 첫 구절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대목이 있는데 얼마나 새로운 인식입니까.
또 영국 작가 체스터튼은 가로수를 가리켜 '노상 누워 있던 땅의 일부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벌떡 일어선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새로운 인식입니까. 관습적인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지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앞으로 좀 써야 합니다. 남의 시를 읽되 자기가 쓸 때에는 보지 마세요. 그러면 비슷비슷한 시를 쓰게 됩니다. 그때는 떠나 보내버리세요. 완전히 자물통을 채워놓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쓰는 게 좋습니다.
다음은 동심적 발상을 해라. 왜냐하면 어린애가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신선합니까. 시인은 그런 발상을 해야 합니다. 맨날 나이만 먹다가 나는 늙었는데 하면서 왜 자기를 빨리 늙게 합니까. 주름살이 늘어서 늙는 게 아니고 영혼이 깜깜해질 때 늙는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라도 마음이 늘 살아있고 마음에 언제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겠다는 사람은 얼굴이 훨씬 젊어 보입니다. 화장을 해서 젊게 보이는 게 아니고 마음을 색칠하라는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을 직시해라. 아무리 시를 잘 써도 자기 인생이 들어가 있지 않거나 존재의 그런 게 없거나 현실과 너무 분리된 시나 음풍영월조의 시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방법을 써도 시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울하고 죽어야 되나 살아야 되나 하면서 새벽시장도 가보고 미친 듯이 다닙니다. 낯선 곳도 가보고 어디 가다가 노을을 보고 앉아서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나를 자꾸 닦달을 해야 됩니다. 고목도 바람이 흔들어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저는 거실에 풍경을 달아 놓았습니다. 풍경 밑에 물고기가 달려 있는데 왜 물고기를 달았을까요.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답니다. 그래서 용맹정진하는 수도자처럼 물고기가 눈을 뜨고 자듯이 정신이 깨어 있으란 뜻으로 물고기를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 시인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남이 잘 때 잘 것 다 자고 남이 먹는 것은 다 먹고 배가 불러서 정신은 어디로 가고 배부를 때 시가 됩니까.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꼭 세 끼를 먹어야 합니까. 그 한 끼를 아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가 안될 때는 하루에 몇 번씩 풍경을 칩니다. 아마 옆집 사람은 스님이 와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나는 그럴 때 정신이 바싹 듭니다. 물고기한테 부끄럽습니다.
그 미물도 잘 때 눈을 뜨고 자고 스물 다섯 번을 허물벗기를 하고 공중으로 아주 멋있게 나르고 짝짓기를 한 다음 하루를 살다가 죽는답니다. 하루를 살다 죽는 그 미물도 성충이 되려고 천 일을 물 속에서 보내고 스물 다섯 번의 허물을 벗는데, 오관을 가진 인간이 허물도 하나 벗지 않고 고통도 받지 않고 고뇌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어려운 시를 쓸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미물한테서 시인의 치열성을 배웁니다. 그 미물의 치열함이 나의 새로운 가치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치열한 깨우침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면서 그 시가 정신의 밥이 되거든요. 그리고 나를 잘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잘 산다는 거는 시로 된 정신의 밥을 먹으면서 살아야 잘 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함민복 씨의 시 [긍정적인 밥]으로 강의의 결론을 대신하겠습니다.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시(詩) > 천양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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