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병초
-
이병초 - 삐비꽃시(詩)/이병초 2014. 7. 5. 17:23
수랑둘배미 위 야트막한 산 아재가 생기다 만 눈썹 꿈틀대며 삐비 뽑아주던 데 햇살이 솔가지들 새로 뼘재기 하던 데 식은 풀떼죽에도 땀을 질질 흘리는, 야매로 똥꼬 수술하고 새살 안 차는, 왼종일 쌔빠지고 고봉밥 천신도 못 하는, 때리면 맞고 피나면 닦고 띵띵 부어오른 데 소주 부어 달래는, 왜무 막 뽑아놓은 것 같은 고년 종아리에 허천들려 용갯물을 한 말은 쏟았을 거라는, 흙째 묻힐란다고 몸띵이 아무데나 뼉다구 튀어나온, 어성초 오갈피 똥물에 이골난, 손톱이 때 낀 발톱 같은 아재가 부글부글 통개를 삶았던 데 소나무 그늘도 솥 걸었던 자리도 없어지고 삐비가 허옇게들 쇠었다 (그림 : 김지환 화백)
-
이병초 - 봄편지시(詩)/이병초 2014. 7. 5. 17:05
쪽창이 있으나마나 한 이 길갓방에서 나는 컸다 외짝문 외엔 따로 문이 없어 누가 밖에서 숟가락이라도 걸면 숨 막혀 죽을 판이었지만, 빨려 들어온 동네 소문이 나갈 데를 못 찾고 흙벽에 스며들었다 귀 달린 구렁이 얘기, 감천사 새끼여승 얘기 며느리 젖에 난 종기 쪼옥쪽 빨아냈다는 갈재 할배 얘기 빤스 벗기 고스톱도 넌덜머리날 쯤 저것덜 땜시 동네 아덜뜰 다 베리겄다고 몇 차례 눈이 더 내리고, 복사꽃 살구꽃이 피었다 지고 다시 펑펑펑 주먹눈 쏟아졌다 토란대 넣고 끓인 개장국을 양푼째 퍼먹으며 생솔 태운 냇내를 깔고 뭉개며 내 뜻과 상관없이 문틈에 끼었다 덜덜 빠져나오는 시간을 군둥내나는 묵은지에 얹어먹으며 불티재가 뜬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도대체 뭔 꿍꿍이냐, 니가 이런다고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
-
이병초 - 또랑길시(詩)/이병초 2014. 7. 5. 17:01
동진강 가는 또랑길 보릿대 태우는 냇내가 무덥다 내 손바닥 잔금들이 소쿠리 바닥 찍어놓은 것 같다고 쫑알대는 지지배를 따라왔던 길, 논고랑에 튀는 가물치를 삽날로 찍어냈다는 말에 갯버들 속에 물떼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던 길, 아이 깜짝야, 니가 시켰지 너 이담에 뭐 될라고 그러냐? 내 겨드랑이 깊숙이 박힌 날갯죽지를 지지배는 다짜고짜 끄집어내려 들었고 노을 깔리는 강둑길에 지지배를 업고 갯내 짠내 뒤엉킨 뻘밭 속에 나는 푹푹 빠지고만 싶었다 와리바시로 쌈장을 찍어 바람벽에 써 보던 이름 동진강 둑길에 깔리던 달짝 같았던 시간을 나는 자살처럼 아꼈다 너 이담에 뭐 될라고 그러냐 쫑알대는 목소리가 동진강 가는 무더운 또랑길에 풀잎처럼 자꾸만 둥글게 휘어진다 (그림 : 김종수 화백)
-
이병초 - 명당明堂시(詩)/이병초 2014. 7. 5. 10:40
꼭 한 자리가 있다는디 황방산으는 멩당이 읎다고, 눙깔 빼기 하자고 설사 멩당이 있다손 치드래도 죽은 뼉다구가 무슨 심이 있어서 후손들헌티 복을 주것냐고 개좆 물디끼 넘들이사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쌓지만 고것들도 속은 탱탱 불었을 것잉만 잘 쓴 묘는 뼉다구도 읎고 물만 찰랑찰랑 혀서 자손만대가 떵떵거린다는디 묫바람 잘못 불먼 집안이 절구난다는디 황방산 보지바우 밑 오목헌디라등가 움푹 꺼진디끼 도톰헌 디라등가 꼭 한 자리 있다는 거그예 지 멩줄 재촉혀서라도 들어가고 자퍼서 꿍꿍이깨나 생담배마냥 타들 것잉만 누런 삽살개가 달을 보고 짖는 밤이먼 그림자 지는 허고 많은 산자락 중에 삽살개 주딩이 겉은 산 그림자 하나가 달을 꽉 깨물디끼 시늉허는 거그 거그가 바로 풍수책에도 적혀 있다는 황방폐월(黃尨吠月) 거..
-
이병초 - 써레시(詩)/이병초 2014. 7. 5. 10:37
깨진 계란껍질 같은 손금을 쥐고도 나는 아직도 병신이 못 되었다 올여름은 일 없이 이곳 과수원집에 와서 꽁짜로 복송도 얻어먹고 물외순이나 집어주고 지냈다 아궁이 재를 퍼서 잿간에 갈 때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잿간 구석에 처박힌 이 빠진 써레에 눈길이 가곤 했다 듬성듬성 시연찮은 요 이빨들 가지고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긴 골랐었나 뭉텅뭉텅 빠져나간 게 더 많지 않았겠나 이랴 자라! 막써레질로 그래도 이골이 났었겠지 창틀에 뒤엉킨 박 넝쿨들 따로따로 떼어 뒤틀린 서까래에 매어두고 나도 이 빠진 한뎃잠이나 더 자야겠다 (그림 : 김대섭 화백)
-
이병초 - 문살시(詩)/이병초 2014. 5. 1. 17:28
외갓집 뒷방 문살은 대나무를 쪼개 낫으로 납작하게 민 것이었다 긴 대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질렀고 짧은 대는 둥근 풀잎처럼 그냥쟝 휘어져 간신히 문살 시늉을 하고 있다 문틀은 네모났으나 휘어진 문살이 만든 칸들은 귀 떨어진 채여서 둥글게도 보인다 배가 불룩해서 애 밴 여자 같다 어린것 잠짓이 왜 고로코롬 사납댜? 습자지를 문창에 비춰가며 외할매는 담배를 말고 무릎 사이에 두 귀를 파묻은 당신 머리빡으로 우수수 쏟아져버릴 것 같은 문살들 달빛이 튕겨나가며 댓잎무늬를 쳐댄다 삼베이불 위에 깔린 댓잎무늬를 베고 문살마다 푸르스름한 비린내가 묻어 있다 (그림 : 방복희 화백)
-
이병초 - 곗날시(詩)/이병초 2013. 12. 26. 14:29
참깨 베어낸 자리 오목하게 파서 삭달가지 불쏘시개 한 줌 깔고, 장작 쌓고 불을 댕긴다 검게 뭉클거리는 연기 다 빠져나가고 야울야울 이글거리는 잉걸불 그 위에 철망 걸고 도톰하게 썰어온 돼지목살을 굽는다 지글지글 기름방울 떨어질 때마다 불길 확 솟으며 낸내가 묻는 목살 마늘된장 찍는다 비계 많은 쪽만 골라먹는 놈은 입천장이나 데어라. 저만 오래 살겠다고 술담배 끊은 비겁한 놈은 똥꼬 대라고 조져라! 가을햇살에 심줄 튀어나오며 붉어진 목 바람 타는 수수모가지처럼 몸이 흔들린다 학교 갔다 돌아와 허둑거리며 솥뚜껑을 열면 부우웅 날아오르는 파리떼 파리가 죄 빨아먹은 붉은 수수알 깨금깨금 빼먹고 나면 입술이 소 혓바닥처럼 깔깔했지 토방에 뱉은 수수껍질 쓸며 눈앞이 흐려왔지 비틀거리는 친구의 귀밑께 뒷목께 히끗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