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박상천
-
박상천 - 헐거워짐에 대하여시(詩)/박상천 2013. 12. 30. 09:36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폭과 길이가 같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아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250미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하루종일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음을 말하는게 아닌가 봅니다.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헐거워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그림 : 변응경 화백)
-
박상천 - 사랑한다는 말은 망설일 필요가 없네시(詩)/박상천 2013. 12. 29. 19:31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어느 날 문득 사랑한다는 말도 하기 전에 이 지상을 떠나가 버리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을 때 내 사랑하는 사람들 문득, 세상을 떠나가 버리고 마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숨차게 계단을 뛰어내려 가면, 갑자기 지하철 열차가 문을 닫고 떠나가버리듯 나 혼자 이곳에 남겨 두고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네. 내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은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떠나가 버리네. 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림 : 김준용 화백)
-
박상천 - 소주를 마시며 2시(詩)/박상천 2013. 12. 29. 16:52
소주가 맛있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사람들이 웃건 말건 나는 소주가 맛있다 저녁을 먹으며 혼자 소주를 마신다고 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사람들이 웃건 말건 나는 혼자서도 곧잘 소주를 마신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소주가 먼저 생각난다고 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사람들이 웃건 말건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소주를 마셔야 한다 자꾸만 쭈뼛거려져 멋 낸 옷 한 번 입지 못하는 내가 소주에 대해서만은 사람들의 웃음을 잘도 견뎌낸다 하지만 어디 소주만이랴 내가 견뎌야 할 사람들의 웃음이 우리가 서로에게 견뎌야 할 일들이 (그림 : 이홍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