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문정희
-
문정희 - 우리들 마음속에시(詩)/문정희 2017. 7. 20. 09:26
빛은 해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그대 손 잡으면 거기 따뜻한 체온이 있듯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사랑의 빛을 나는 안다 마음속에 하늘 있고 마음속에 해보다 더 눈부시고 따스한 사랑이 있어 어둡고 추운 골목에는 밤마다 어김없이 등불이 피어난다 누군가는 세상은 추운 곳이라고 말하지만 또 누군가는 세상은 사막처럼 끝이 없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무거운 바위틈에서도 풀꽃이 피고 얼음장을 뚫고도 맑은 물이 흐르듯 그늘진 거리에 피어나는 사랑의 빛을 보라 거치른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을 보라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하늘 해보다 눈부시고 따스한 빛이 아니면 어두운 밤에 누가 저 등불을 켜는 것이며 세상에 봄을 가져다 주리 (그림 : 이갑임 화백)
-
문정희 - 첼로처럼 살고 싶다시(詩)/문정희 2017. 7. 10. 13:02
하룻밤 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매캐한 담배연기 같은 목소리로 허공을 긁고 싶다 기껏해야 줄 몇 개로 풍만한 여자의 허리 같은 몸통 하나로 무수한 별을 떨어뜨리고 싶다 지분 냄새 풍기는 은빛 샌들의 드레스들을 넥타이 맨 신사들을 신사의 허세와 속물들을 일제히 기립시켜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게 하고 싶다 죽은 귀를 잘라버리고 맑은 샘물을 길어올리게 하고 싶다 슬픈 사람들의 가슴을 박박 긁어 신록이 돋게 하고 싶다 하룻밤 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그림 : 채기선 화백)
-
문정희 - 찔레시(詩)/문정희 2017. 5. 16. 15:02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그림 : 한희원 화백)
-
문정희 - 몸이 큰 여자시(詩)/문정희 2017. 4. 30. 12:03
저 넓은 보리밭을 갈아엎어 해마다 튼튼한 보리를 기르고 산돼지 같은 남자와 씨름하듯 사랑을 하여 알토란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는 탐스런 여자의 허리 속에 살아 있는 불 저울과 줄자의 눈금이 잴 수 있을까 참기름 비벼 맘껏 입 벌려 상추쌈을 먹는 야성의 핏줄 선명한 뱃가죽 속의 고향 노래를 젖가슴에 뽀얗게 솟아나는 젖샘을 어느 눈금으로 잴 수 있을까 몸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지 식사 때마다 밥알을 세고 양상추의 무게를 달고 그리고 규격 줄자 앞에 한 줄로 줄을 서는 도시 여자들의 몸에는 없는 비옥한 밭이랑의 왕성한 산욕(産慾)과 사랑의 노래가 몸을 자신을 태우고 다니는 말로 전락시킨 상인의 술책 속에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이 된 시대의 미인들이 둔부의 규격과 매끄러운 다리를 채찍질하며 뜻없이 ..
-
문정희 - 명봉역시(詩)/문정희 2017. 4. 25. 12:09
아직도 은소금 하얀 햇살 속에 서 있겠지 서울 가는 상행선 기차 앞에 차창을 두드릴 듯 나의 아버지 저녁노을 목에 감고 벚나무들 슬픔처럼 흰 꽃 터뜨리겠지 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 하겠지 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눈앞에 빙판길 미리 알고 봉황새 울어 주던 그날 거기 그대로 내 어린 날 눈 시리게 서 있겠지 명봉역(鳴鳳驛) :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에 위치한 경전선의 철도역이다. 1930년 12월 25일에 영업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궁화호가 1일 5회 정차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주변 마을인 봉화촌 뒷산마을을 숫봉황이라 하고 봉동마을 뒷산을 암봉황이라 하여 명봉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워하는 울음소리가 명봉리 부근에 들려오는 형국이라 명봉(鳴鳳)이라 하였으며 지역 명칭을 따라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