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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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 졸업시(詩)/김사인 2023. 2. 13. 10:29
선생님 저는 작은 지팡이나 하나 구해서 호그와트로 갈까 해요 아 좋은 생각, 그것도 좋겠구나. 서울역 플랫폼 3과 1/4번 홈에서 옛 기차를 타렴. 가방에는 장난감과 잠옷과 시집을 담고 부지런한 부엉이와 안짱다리 고양이를 데리고 호그와트로 가거라 울지 말고 가서 마법을 배워라. 나이가 좀 많겠다만 입학이야 안되겠니. 이곳은 모두 머글들 숨 막히는 이모와 이모부들 고시원 볕 안 드는 쪽방 뒤로 한 블록만 삐끗하면 달려드는 ' 죽음을 먹는 자들 '. 그래 가거라 인자한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과 주근께 친구들 목이 덜렁거리지만 늘 유쾌한 유령들이 사는 곳. 빗자루 타는 법과 초급 변신술을 떼고 나면, 배고프지 않 는 약초 욕 먹어도 슬퍼지지 않는 약초 분노에 눈 뒤집히지 않는 약초를 배우거라. 학자금 융자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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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 비둘기호시(詩)/김사인 2020. 11. 10. 18:09
여섯 살이어야 하는 나는 불안해 식은땀이 흘렀지. 도꾸리는 덥고 목은 따갑고 이가 움직이는지 어깻죽지가 가려웠다. 검표원들이 오고 아버지는 우겼네. 그들이 화를 내자 아버지는 사정했네. 땟국 섞인 땀을 흘리며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나는 오줌이 찔끔 나왔네. 커다란 여섯살짜리를 사람들은 웃었네. 대전역 출찰구 옆에 벌세워졌네. 해는 저물어가고 기찻길 쪽에서 매운바람은 오고 억울한 일을 당한 얼굴로 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눈을 보냈네. 섧고 비참해 현기증이 다 났네. 아버지가 사무실로 불려간 뒤 아버지가 맞는 상상을 하며 찬 시멘트 벽에 기대어 나는 울었네 발은 시리고 번화한 도회지 불빛이 더 차가웠네. 핼쑥해진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어두운 역사를 빠져나갔네. 밤길 오십리를 더 가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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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 눈물이 저 길로 간다시(詩)/김사인 2020. 11. 10. 18:01
눈물이 저 길로 간다 슬픔 하나 저 길로 굴러간다 물 아래 물 아래 울음이 간다 찔레꽃 한 잎 물 위에 흘러간다 오늘 못 가고 내일 내일 못 가고 모레 글피 글피 아니고 아득한 훗날 그 훗날 고요한 그대 낮잠의 머리맡 수줍은 채송화꽃 한 무더리로 저 길로 저 길로 돌아 내 눈물 하나 그대 보러 가리 그대 긴 머리칼 만나러 가리 서늘한 눈매 만나러 가리 오늘 아니고 어제 어제도 훨씬 아닌 전생의 어느 날 눈물은 별이 되어 멀리로 지고 손발 없는 내 설움 흰 눈 위로 피울음 울며 굴러서 간다 (그림 : 한희원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