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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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 새벽별을 보며시(詩)/김사인 2014. 9. 7. 00:39
서울에서 보는 별은 흐리기만 합니다. 술에 취해 들어와 그래도 흩어지는 정신 수습해 변변찮은 일감이나마 잡고 밤을 샙니다. 눈은 때꾼하지만 머리는 맑아져 창 밖으로 나서면 새벽별 하나 저도 한 잠 못붙인 피로한 눈으로 나를 건너다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서로 기다려온 사람처럼 말없이 마주 봅니다. 잃은 만큼 또 다른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대도 시골 그 곳에서 저 별을 보며 고단한 얼굴 문지르고 계신지요. 부질없을지라도 먼 데서 반짝이는 별은 눈물겹고 이 새벽에 별 하나가 그대와 나를 향해 깨어 있으니 우리 서 있는 곳 어디쯤이며 또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저 별을 보면 알 듯합니다. 딴엔 알 듯도 합니다. (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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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 통영시(詩)/김사인 2014. 9. 5. 17:32
설거지를 마친 어둠이 어린 섬들을 안고 구석으로 돌아앉습니다. 하나씩 젖을 물려 저뭅니다. 저녁비 호젓한 서호시장 김밥좌판을 거두어 인 너우니댁이 도구통같이 튼실한 허리로 끙차, 일어서자 미륵산 비알 올망졸망 누워계시던 먼촌 처가 할매 할배들께서 억세고도 정겨운 통영 말로 긴 봄장마를 한마디씩 쥐어박으시며 흰 뼈들 다시 접으시며 끙, 돌아눕는 저녁입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이래봬도 충청도 보은극장 앞에서 한때는 놀던 몸 허리에 걸리는 저기압대에 홀려 앳된 보슬비 업고 걸리며 민주지 덕유산 지나 지리산 끼고 돌아 진양 산청 진주 남강 훌쩍 건너 단숨에 통영 충렬사까지 들이닥친 속없는 건달입네다만, 어진 막내 처제가 있어 형부 하고 쫓아올 것 같은 명정골 따뜻한 골목도 지나왔습니다. 동백도 벚꽃도 이젠 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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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 풍경의 깊이시(詩)/김사인 2013. 12. 11. 13:20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 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