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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인 - 풍경의 깊이
    시(詩)/김사인 2013. 12. 11. 13:20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 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림 : 이순옥 화백)

     

     

                                                                                                                                             (낭송 :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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