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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마친 어둠이
어린 섬들을 안고 구석으로 돌아앉습니다.
하나씩 젖을 물려 저뭅니다.
저녁비 호젓한 서호시장
김밥좌판을 거두어 인 너우니댁이
도구통같이 튼실한 허리로 끙차, 일어서자
미륵산 비알 올망졸망 누워계시던 먼촌 처가 할매 할배들께서
억세고도 정겨운 통영 말로 긴 봄장마를 한마디씩 쥐어박으시며
흰 뼈들 다시 접으시며
끙, 돌아눕는 저녁입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이래봬도
충청도 보은극장 앞에서 한때는 놀던 몸
허리에 걸리는 저기압대에 홀려
앳된 보슬비 업고 걸리며 민주지 덕유산 지나 지리산 끼고 돌아
진양 산청 진주 남강 훌쩍 건너 단숨에
통영 충렬사까지 들이닥친 속없는 건달입네다만,
어진 막내 처제가 있어
형부 하고 쫓아올 것 같은 명정골 따뜻한 골목도 지나왔습니다.
동백도 벚꽃도 이젠 지루하고
몸 안쪽 어디선가 씨릉씨릉
여치 같은 것이 하나 자꾸만 우는 저녁 바다입니다.
(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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